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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석님의 서재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김영하
  • 10,800원 (10%600)
  • 2020-07-20
  • : 4,363

별로인 작품이 없다! 믿고 읽어도 되겠다! 4.5/5

 

무려 20년 전의 소설들임에도 고전적이라는 느낌이 없다. 그만큼 이 소설집이 당시에 얼마나 독창적이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여러 번 개정판이 나왔는데, 흡혈귀를 맨 앞으로 배치한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김영하가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맨 앞에 있는 편이 가장 자연스럽다.

 

<흡혈귀> 3/5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이 깔끔하고 완성도 높게 진행된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 남편이 흡혈귀임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어차피 여자가 편지로 전달을 하기 때문에 사실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그래서 의미가 전달되긴 하나, 사건이 심화되지는 않는다. 심화되지 않는 내용이 길게 서술되면서 흥미가 유지되지 않고 지루한 느낌을 준다. 그 부분을 좀 줄이고 의미를 좀 더 형성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사진관 살인사건> 3.5/5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욕망을 표출하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아무에게나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표출된 욕망은 항상 나쁘다는 인식을 갖는다. 그러니 내밀한 남의 욕망을 캐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욕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남에게 들키고 나면 그런 욕망은 파괴되어 버린다. 욕망이 파괴된 사람은 무언가 빠져나간 듯 이상해지기에, 욕망은 갖고 있으면 괴롭고, 이루면 파괴되는 아이러니한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4.5/5

도시 속 사람들의 무관심과 철저하게 무시당하며 변화를 꿈꿀 수 없는 개인. 남에게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자신과 일치시키며 끊임없이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각자 삶이 있는 입장에서 그것은 쉽지 않다. 모두들 악의가 있지는 않을 테지만 쓸쓸함이 남는다. 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갔다. 인물에 대한 구구절절한 정보 하나도 없이 사건을 깔끔하게 전개한다.

 

<당신의 나무> 5/5

씨앗이 머리를 쪼개듯 마지막까지 읽고 내 머리도 쪼개지는 듯했다.

사람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누군가를 서서히 파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상대도 나를 파괴하고, 나도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관계는 단단해지고 버틸 수 있게 되고,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의지의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숴버리지는 않을지 두려워한다. 여행 중이라는 상황을 설정하여, 고된 여행 끝에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이런 깨달음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초반부터 주인공은 나무를 무섭고 두려운 것으로 본다. 이런 나무에 대한 의미와 이미지를 함부로 바꾸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간다. 사원을 부수고 있는 나무를 보는 장면에서, 나무의 공격적인 이미지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나무의 의미만 바꾸어 형성한 것이 훌륭했다.

나비효과는 굉장히 독특한 연결 방법이다. 처음에 그릇이 덜컹거리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큰 사건 사고들까지,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주의 이야기를 들여오면서 나비효과가 한 반향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을 역전시킨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의 인과관계를 전부 하나로 묶어버렸다.

사원과 나무의 관계를 이용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보여주고, 나비효과를 이용해 누가 사원이고 누가 나무인지는 구별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피뢰침> 3/5

발상이 정말 좋은 소설이다. 말도 안 될 법한 소재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정말 그럴싸하게 포장했다. 이 부분은 정말 잘 이루어졌다. 그러나 강조되는 포인트가 아쉬운 것 같다. 처음엔 주인공이 번개를 맞았던 것이 트라우마가 된 이야기로 시작된다. 독자들은 주인공과 번개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소설 내에서 가장 강렬하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인 낙뢰 여행에서 정작 번개를 맞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다. 주인공이 키스를 하며 번개를 좀 맛보긴 하지만 압도적으로 강렬하게 묘사된 것은 주변 인물의 행위이다. 기승전결 면에서 다른 작품에 비해 완성도가 좀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비상구> 4.5/5

이렇게 써야 청춘이지. 당최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가늠이 안 되는데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고 참신하고 유쾌하다. 긴장감이 끝까지 한차례도 쉬지 않고 고조된다. 믿을 수 있는 곳이 하나 없는 이들은 뾰족한 수가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때울 뿐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수 없다. 도망칠 곳 하나 없이 헤매다 겨우 비상구를 찾아도, 그곳은 비상구로 작용하지 못한다.

 

<고압선> 3.5/5

꼭 투명 인간이 아니어도 투명인간 마냥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가 투명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달랐을까? 투명 인간이 되는 조건을 좀 더 명확히 제시했으면 좀 더 긴장감 느끼며 봤을 것 같다. 그러나 긴장감보다는 쓸쓸함으로 보는 이야기인 것 같긴 하다. 무엇보다 집에 들어갔을 때 아내와 어머니가 박박 긁는 장면이 가장 잘 드러난 것 같다.

 

<바람이 분다> 3.5/5

현실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이룰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한 채 살아가던 남자가 있다. 굳게 다져진 줄만 알았던 마음에 타인이 작은 흠집을 내면서 희망을 심는다. 남자는 믿지 않으려 했지만 희망은 달콤했고, 견고하던 그의 마음은 서서히 깨져간다. 심지어 이런 과정은 매우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결국 그 희망이 헛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현실의 한계를 인지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 남자는 어떻게 되는가. 서서히 퍼지는 희망을 내버려 둔 것은 자신이기에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남자는 그것을 덤덤히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다. 결국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쓸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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