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있는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쉽다. 5/10
‘사랑이 한 일’은 창세기와 관련된 다섯 편이 실려있는 연작소설이다. 설정 및 인물은 모두 창세기에 있는 것을 그대로 차용했다. 인물이나 배경을 직접 설정하지 않고, 기존의 것을 가져왔는데도 소설이 될 수 있는가? 작품을 한 편씩 읽어보고 소설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소돔의 하룻밤>
소설보다는 에세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문체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서사를 전개하는 것보다는 단편적인 장면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짧은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샷바이샷으로 멈춰놓고 다시 재생하며 한 장면을 반복해서 살핀다. 담겨있는 사유의 가짓수가 많아 한 번에 쓰면 복잡해질 것을 염려하여 파트를 다 나눠서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한 파트는 또 사유를 얕은 데서부터 점차 심화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씩 다시 둘러보았다. 상황을 자세하게 보여주며 독자들도 이 문체에 같이 스며들어 생각해볼 수 있게 했다.
소돔에서 일어난 일들은 현재에 이해하기 힘든 짧은 이야기일 뿐인데 이것을 이해하고자 깊게 사유한 것이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과거 시대의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부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사유했다.
그렇게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만 보였던 소돔 시민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의 문체와 서술하고자 하는 방식에 자연스레 익숙해질 수 있었다. 다른 작품들과 함께 읽어야 의미가 확장되는 다른 네 편에 비해 스스로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
<하갈의 노래>
소돔의 하룻밤에 비해 작가의 말이 줄고, 하갈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일반적인 소설과 비슷한 문체가 되어 인물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에 맞는 적절한 문체를 골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에 드러나는 인물이지만, 그곳에선 건조하게 보일 수 있던 인물을 상상력과 관찰력으로 이입해 보여주며 세심하게 채워서 이야기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사랑이 한 일>
작가는 위에서 에세이적 문체와 서사적 문체를 한 차례씩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묘한 지점에서 서술하기 시작한다. 화자는 아들인 것 같으나 작가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심층적으로 장면들을 분석할 수 있음과 동시에 인물에 이입해서 그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문체의 어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건조한 이야기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발상이 좋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풀어내기 위한 생각의 발전 과정이 꼼꼼하고 근거가 탄탄하다. 생각에 따라갈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던 일의 원인이 사랑에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면서, 이 책 전체에 걸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에 사랑이 있다는 의미를 형성해낸다.
<허기와 탐식>
다섯 편의 작품 중 작가의 생각 흐름이 가장 허술한 작품이었다. 물론 허기와 탐식이라는 해석은 흥미롭고 다른 작품들과도 연결되어서 기발하고 촘촘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까지 발전하는 과정에 비약이 너무 많다. 다른 작품들에서 한 상황의 모든 면모를 보면서 천천히 생각을 쌓아간 것에 비해 세심한 것들을 무시하고 원하는 곳까지 생각을 밀어붙였다.
편애의 이유 즉 사랑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생성되는 것인데 어떠한 것은 단지 이유로 들기에 부족해 보인다며 고려해보지도 않고 배제한다. 좋은 음식의 맛은 그 사람의 기분에 변화를 주어 요리한 이의 정성에 관계없이 요리한 이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심어줄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마다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은연중에 그를 만나고 싶어하고 호감을 느끼는 일은 당연한 것이 된다. 음식에 대한 특별한 기호가 사랑을 만든다는 말을 작가가 들어본 적이 없기에 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근거가 빈약하다. 특별한 음식은 동질감, 유대감 등 다른 많은 감정을 이끌어내어 충분히 사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품의 뒤로 갈수록 허기와 탐식에 관련된 사유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긴 한다. 그러나 작품 초반에 의미 없이 서술된 비약이 담긴 부분들이 좋은 구조로 보이진 않는다. 다른 작품들처럼 천천히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억지로 논리적이지 않은 초반 분량을 늘린 것 같다. 이런 작가의 논리들이 소설이라서 성립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비겁한 것이다. 서사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 흐름과 논리를 소설이라며 근거와 상관없이 써냈기 때문이다.
앞의 다른 작품들에서 쌓아온 인물의 특징이 다 사용되어 가장 감정이 풍부하게 작용하는 작품이다. 앞의 작품에서 이해하고 왔기 때문에 하갈과 이삭의 마음이 와닿았고, 그로 인해 이 소설에 야곱과 아벨이 중심이었다 하더라도 모든 인물이 공감되며 몰입되었다.
<야곱의 사다리>
창세기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삽입된 에필로그다.
각 작품을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잘 보여주면서도 작가의 생각 흐름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드러내었다. 작가 사유의 근거고 탄탄했기에 참신한 작가의 발상들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감정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이 동시에 충족될 수 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작가의 사유 외에는 작가가 직접 만들어낸 것들이 들어있지 않다. 내가 느낀 인물의 감정들도 작가가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캐릭터, 줄거리 전부 창세기에 원래 있던 것을 차용했다. 작가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지 않았고 자신만의 인물을 만들지 않았다. 이미 있는 이야기를 내 식대로 해석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쉽다. 소설을 잘 썼고 공감도 잘 이끌어 냈고 많은 사유를 하고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였다는 건 알겠지만 그 사이에 상상력만 잘 불어 넣었다고 해서 완전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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