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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석님의 서재
  • 단지 살인마
  • 최제훈
  • 11,700원 (10%650)
  • 2020-09-25
  • : 366

단지 살인마의 정체는 ’패턴이라는 환상‘ 6/10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

이야기의 흐름은 전체적으로 단지 살인마를 따르지만, 단지 살인마의 정체에 눈이 팔리게 한 뒤 주인공의 선에서 이야기를 끝냈다.

단지 살인마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기 힘든 정신병을 가진 인물의 내면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작가는 어떤 감정을 표현할 때 어떤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주인공이 느끼는 당혹, 기쁨, 긴장, 불안 등의 여러 감정을 때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묘사하고 표현한다. 그 방식은 굉장히 효율적이어서 주인공의 내면에 깊게 몰입하고 그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센스 있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치밀한 상황을 설계하여 표현하면서 캐릭터를 훌륭하게 구축해냈다. 쫀득하게 당겨야 할 때 그럴 줄 아는 사람. 긴장과 몰입의 강약을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다만, 주인공에게 몰입해서 읽어가는 것이 매력적인 소설이었는데, 승범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주인공이 아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승범에 대한 설명 없이 주인공이 먼저 승범을 쫓고 그 뒤에 설명이 나온다. 주인공의 내면 흐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좇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과 내가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며 몰입도를 떨어트렸다.

 

 

<더 중요한 것은 패턴인가, 승범 살인인가>

주인공은 단지 살인마의 패턴에 자신도 합류하고 싶었던 것일까, 승범을 너무도 죽이고 싶었어서 자신이 발견한 단지 살인마의 패턴을 이용한 것일까?

이 문제는 포인트가 한 곳을 쏠리지 못해 일어났다. 주인공이 승범을 죽이는 이유는 두 가지 다다. 그러면서 사건의 강렬함도 반토막이 났다.

 

주인공이 승범을 죽이는 데에 있어서, 주인공이 과거의 일 때문에 힘들어서 정신에 문제까지 생겼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소설 처음 부분에 정신에 문제가 도드라지지도 않고 과거 일을 상기하며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평생을 걸쳐 반드시 승범을 죽이려 했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생각에 없던 기회가 생겨 죽인 사람처럼 보인다.

주인공은 패턴에 집착한다. 단지 살인마의 패턴도 찾고 싶어 하고 단지 살인마의 패턴을 찾은 뒤엔 그 패턴에 맞게 살인을 저지르고 그 뒤에 일어난 살인의 패턴들도 확인한다. 죽고 나서도 패턴을 확인하고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마지막 한 명을 궁금해한다.

 

승범을 살인한 이유를 더욱 명확히 해야 승범을 죽이고 단지 살인마에 합류하는 것이 강렬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뒤의 사건들까지 힘을 잃는다.

 

 

<패턴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주인공은 왜 그토록 패턴에 집착하는가? 주인공은 어렸을 적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정신병이 있어 사람들도 쉽게 만나지 못한다. 그런 주인공이 돈을 벌며 보통 사람처럼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주식이었다. 주인공이 주식에서 성공할 수 있던 이유는 패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이로써 세상의 패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를 때에도 패턴에서 어긋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패턴대로 따라야 안심하는 것이다. 승범을 죽일 때에도 패턴에 의하면 반대 손은 어느 손가락부터 잘라야 하는지 고민하고, 손동식을 죽이려 했을 때도 패턴에 의하면 손동식이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망설인다.

 

이러한 패턴은 절대적인 것일까?

주인공은 손동식이 외래어를 꺼낼 때에만 말을 더듬는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손동식은 외래어가 아닌 말에서도 말을 더듬으며 주인공이 발견한 패턴과 다른 행동을 한다. 손동식은 패턴을 깬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패턴이란 것은 주인공이 만들어낸 착각인 것일까?

수도 없이 많은 선택지를 늘어놓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에게는 선택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패턴을 발견하고 따르는 것은 많은 고민을 줄여주고, 자신이 맞는 선택을 했다는 안정감을 주기 좋아 보인다. 실제로 주인공은 주식에서처럼 세상에도 안정과 정답을 주는 패턴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주인공은 보고 싶은 대로 해석하며 세상의 모든 일을 억지로 엮어서 패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사실 세상에는 패턴이 없다. 복잡한 세상은 정해진 틀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손동식은 외래어 앞에서만 말을 더듬진 않았을 것이다. 여러 말 앞에서 말을 더듬었겠지만, 주인공이 본 순간엔 외래어 앞에서 말을 더듬었고 주인공은 자신이 본 것만으로 패턴을 만들어 손동식을 단순화한 것이다.

결국 주인공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주인공 스스로 만들어낸 패턴이라는 환상이다. 여러 사람이 저지른 비정형적인 살인엔 십계명이라는 패턴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살인의 원인을 유추해보았듯이, 주인공도 수많은 원인 중 하나를 유추한 것뿐이다.

 

열 번째 십계명의 희생자를 통해 단지 살인마의 패턴이 지켜질 것인지 아닌지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범인이 주인공으로 몰릴 확률이 커진 이상, 단지 살인마에 동승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새로 열 번째 살인에 끼어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짜 단지 살인마가 등장한다고 해도 자신이 하던 살인을 이어서 할 것이기에 최소한 여섯 번째 살인부터 이어갈 것이다. (더 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열 번째 십계명의 패턴이 지켜질 확률은 극히 작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패턴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고, 패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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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사랑하는 우리는 선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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