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외 들러리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그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 생의 일부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거라면 인물이 매력 있어야 한다. 그 인물의 일생이 궁금하고 처해진 상황이 궁금하고 반응이 궁금해야 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기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이 이야기의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매력적이지 않았고 그래서 궁금하지도 않았다.
작가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여러 생소한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그게 무슨 뜻인지, 왜 그런지 설명을 하지 않았다. 왜 꼭 그런 단어들을 사용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는 얘기의 방향이 이리저리 튀는 방식의 전개를 택했다. 간병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부분과 사촌과의 부분과 과거 기성과의 부분이 잘 녹아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각 방향마다의 연결이나 개연성이 부족했다. 또한 모호한 표현과 헷갈리게 써 놓은 문장이 여럿 있었다. 여기저기 튀어 다니는 흐름과 모호한 표현 속에서 작품 내에 독자의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경제적인 묘사가 훌륭했다. 한두 줄의 상황과 동작, 그리고 한두 단어만으로 인물의 성격을 굉장히 잘 드러내면서 경제적으로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빠르게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설명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경제적으로 잘 강조해내면서 매력적인 묘사들을 서술했다.
민영의 이야기와 승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각자의 에피소드가 분리된 채로 제법 길게 서술되면서 반대편의 에피소드를 잊기 쉬웠다. 두 에피소드에서 갈등의 통일성이나 함께 심화되는 모습이 없어 에피소드가 전환할 때마다 긴장감과 갈등이 죽었다. 승아의 갈등은 민아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데에 반해, 민아의 갈등은 마이크라는 다른 인물과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민아의 에피소드를 먼저 보여주고 승아의 에피소드를 보여줬다면 좀 더 갈등이 통일성 있게 나왔을 것 같다.
중요한 것들에 포커스가 제대로 맞춰져있지 않은 것 같다. 인물에 대한 묘사가 조금 지나치게 많았고, 민영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 치고 마이크와의 일화가 너무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다. 메인 사건인 승아와 민아 사이의 갈등이 마이크의 긴 일화에 좀 묻혀 긴장감이 떨어졌다.
묘사도 이야기도 깊은 사유도 다 좋은데, 비중이 비슷한 여러 장면이 나열 느낌으로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긴장감의 심화보다는 전체적으로 잔잔한 작품이었다.
<실버들 천반사>
대화를 자연스럽고 매력 있게 잘 이용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작가는 무슨 요소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고 의미를 형성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초반부에 결이 같은 긴장 요소를 천천히 일으켜 긴장감이 풀리는 것을 방지한 듯 보였다. 메인 사건은 무좀으로 그것이 딸과의 여행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핵심 포인트였다. 계속해서 무좀에 대해 생각하고, 딸아이와 수건을 공유하지 않으면서 사건을 심화시켜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딸아이와 주인공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배경을 탄탄히 했다. 그러나 중후반부부터 이야기는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무좀은 후반부부터는 힘 자체를 잃는다.
이 작품은 클라이맥스가 없다. 그 와중에 감정이 가장 고조되고 주인공이 변하게 되는 계기를 밤에 주인공이 혼자 생각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이는 앞에서 어떠한 발전 과정도 없었고 그래서 어떠한 맥락도 없었으며 그래서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캐릭터 구축도 실패했다. 지식인으로써의 담배, 상식적인 면모와 가부장적 가족의 아내로서 눈치 보는 모습이 섞여들지 않았다. 다른 두 인물을 보는 것 같았다. 이는 작가가 후반부에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억지로 만든 설정이라 그런 것이다. 이 이야기를 살리려면 무좀 걸린 지식인 이야기와 가출한 아내 이야기로 나눠야 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설명하기 위한 글이지 작품이 아니다. 만약 작가가 이런 곳에서 담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다면 소설의 초반부터 남편과 오빠에 대한 설명도 나오고 등장인물들이 모두 동등한 입장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의미를 이끌어 냈어야 한다. 아내와 딸아이의 입장만을 설명하며 그 외의 남성의 입장은 설명 없이 악 자체로 표현해냈다.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인물 중심의 소설이다. 주인공의 내면 묘사가 굉장히 훌륭하게 서술되었다. 또한 주인공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심지어 분량이 많지 않은 인물들까지도 굉장히 경제적으로 묘사해내 신빙성 높은 캐릭터들을 구축해 몰입도를 높이고 탄탄 작품으로 만들었다.
메인 사건이 명확하게 설정되면서 주인공의 목적과 그에 따른 갈등이 쉽게 이해되고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함에도 그런 인물들을 짧은 분량을 이용해 경제적으로 묘사해 작품 전체의 중요도를 흔들지 않고 소설 속에 잘 녹여내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을 택했음에도 그 분량과 타이밍과 정도가 적절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잘 이끌었고, 클라이맥스도 훌륭하게 잘 설정하였다.
<내게 내가 나일 그때>
캐릭터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구축되었으며 대화를 굉장히 자연스럽고 매력 있게 잘 사용했다. 대화를 사용하는 능력은 웬만한 작가들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인물의 행동으로 인물의 성격은 잘 드러내 주나 내면 묘사는 없다. 내면 묘사가 없으니 주인공의 목적이 드러나지 않아 전체 흐름이 감이 잘 잡히지 않고 지루해진다. 배경 묘사도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서 배경 묘사를 길게 하는 편이어서 그런 부분들에선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런 것들만 좀 줄였어도 다른 요소들을 설명할 자리가 훨씬 많이 났을 것이다.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개해나가는 능력이 부족했다. 메인 사건이 있다는 것을 계속 암시하려고 시도하나 그것이 무엇인지 말을 하지 않아 독자가 따라갈 수 없고 이야기가 심화되고 전개되지 못한다. 반전을 노렸을 경우 해도 괜찮은 방식이나 이 작품에 담긴 메인 사건은 전혀 반전의 효과가 없었다. 후반부에 메인 사건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겨우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하나, 너무 늦게 시작된 탓에 곧바로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주인공의 감정을 독자들이 따라갈 수 없다. 또한 클라이맥스를 행동이나 문제 해결에 두지 않고 주인공의 내면에 두어 굉장히 임팩트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끝이 나게 되면서 작가가 이 주제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환되는 에피소드들 사이의 연결성이나 개연성이 부족하다. 안 그래도 주인공의 목적도 드러나지 않고 메인 사건이 심화되지도 않아 독자들이 몰입하기 힘든데, 개연성마저 없으니 전체적으로 사건의 흐름이 좀 뜬금없게 느껴진다. 작가가 혼자만 알고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피소드들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살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은은 첫 부분 외에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심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일 것 같은데 비중 조절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은을 직접 등장시키지 못하더라도 주인공의 생각으로라도 묘사하거나 자주 꺼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들소>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 구축 밖에 없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캐릭터 구축에 굉장히 많은 분량을 사용했다. 캐릭터 구축은 좋았으나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불필요한 에피소드들까지 가득 넣어 이야기가 전개될 자리가 부족했다. 굳이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될 인물에게까지 중요도가 비슷한 에피소드를 잔뜩 구겨 넣었다. 그래서 사건 진행이 굉장히 느리다.
미래에서 과거를 설명하는 듯한 방식을 이용했는데, 실패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행동이나 대사는 어린아이처럼 설정해놓고서 서술 방식이 성인이니까 이질감이 들고 잘 녹아들지 않는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도 그런 방식이 효과적이거나 필요한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길우와의 학예회 이야기와 집주인 노부부의 이야기가 서로 붙지 않는다. 먼저 시작된 노부부 이야기에서 점차 심화되어가던 메인 사건을 뭉텅이로 들어간 길우 얘기가 잘라버려 긴장감이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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