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그렇듯 올해도 내 삶이 여러 면에서 더 나아지기를, 내가 속한 세상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며 새해를 맞았다. 충분한 정보를 얻고 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작년 말에 읽은 <넥스트 씽킹>을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이미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과거보다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지식이나 사고 방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어떤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번에 읽은 <인간 본성의 역습>은 내가 가진 의문을 함께 풀어나가는 책이었다. 저자 하비 화이트하우스는 인간의 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가 단순히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류를 결속시키고 번영하게 했던 강력한 생존 엔진이었다. 하지만 이 소중한 엔진이 현대의 범지구적 위기 앞에서는 오히려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담고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라, 집단의 구성원들과 행동을 같이 하려는 욕구에 있는 듯하다.
그동안은 단순히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걸 순응의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생존 전략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일상화된 의례가 시간과 자원의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인류가 발명해낸 가장 강력한 사회적 통제 수단 중 하나다.
절차를 행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 줄어들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줄어든다.
책에 나온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의례가 집단을 단단하게 묶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 비판을 유보하게 만드는 힘도 함께 지니기 때문에 저자가 언급한 양면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전을 본질적으로 종교 현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성전이라는 개념은 신앙보다 부족주의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족주의는 우리를 결집시켜줄 수도 있지만, 외집단을 극렬히 증오하고 잔혹하게 대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성전은 종교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부족주의가 깊이 작용한다는 걸 알고 놀랐다. 우리 집단의 가치를 보편적 진리로 신성화하는 순간 외집단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된 여러 사례들을 읽으면서, 세상의 많은 문제들에 생각보다 부족주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지금 당장 직면한 문제를 우선시할 뿐 아니라 환경이 가혹해질수록 더 근시안적으로 변해 단기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선천적인 성향을 물려받았다.
오늘날 지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족과 국가 차원에서 인류 전체 차원으로 의례 공동체의 규모를 훨씬 더 신속하게 확대해야 한다.
우리의 본성이 애초에 멀고 추상적인 위험보다는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 지구적인 문제에도 왜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인간을 낙관적으로만 보고 있지도, 절망적으로 보고 있지도 않다. 어느 쪽으로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파멸로 향할지 더 큰 협력을 하게 될지는 우리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결말을 남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인간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희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