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여명서재
  • 인류 멸종,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
  • 토드 메이
  • 15,300원 (10%850)
  • 2025-10-22
  • : 1,385

가끔 지구의 여러 위기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없는 편이 더 나은 게 아닐까 스스로 묻게 될 때가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판단할 어떤 근거나 기준이 명확히 있는 게 아니다보니, 결국 감정이 너무 앞섰다는 결론을 내고 잊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 막연하고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한 권을 통째로 들여 고민한 책이 있다고 해서 흥미가 생겼다. 심지어 저자가 나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 <굿 플레이스>의 철학 자문이라는 사실도 기대감을 높였다.  

무거운 주제긴 하지만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그렇고 통통 튀고 가벼운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해였다. 문장 자체는 술술 읽히고 내용상으로도 어려울만 한 게 하나도 없는데, 책장을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질문들로 가득했다. 인류 존속이나 멸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각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끈질기게 되묻는 질문들을 읽는 동안 결론을 서둘러 내리기보다는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기후위기. 핵무기 문제. 우리가 다 자초한 것들이다. 인류가 초래했다. 무슨 다른 종이 들고 일어나서 인간에게 지구를 파괴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자초했다. 우리 탓이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제를 인간이 일으켰다는 이 부분을 읽고, 당연히 인류 멸종이 타당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나 역시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막연하게 그런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책에서는 단순한 비판이나 결론으로 나아가기보다, 질문을 계속 뒤집고 또 뒤집으며 문제의 층위를 넓혀간다. 결국 책이 끝나갈 무렵에는 처음보다 오히려 더 헷갈리기 시작했고, 그 자체가 이 문제의 복잡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인류 멸종이 비극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멸종의 과정이 고통스러운데다가 예술이나 과학처럼 인간에게 소중하고 오직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상실된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이에 더해 다름 아닌 인간이 그 상실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비극인데 이 부분이 고전적인 비극에 해당한다.


그동안 나는 멸종을 과거의 여러 대멸종처럼 환경 요인에 의해 사라지는 일로 단순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며 멸종이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고통과 상실이 겹쳐 있는 복합적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온 가치와 성취를 무너뜨린다는 점을 고전적 비극에 비유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기후위기의 수혜자는 현세대지만, 그 부담을 짊어질 사람들은 젊은 세대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온실 가스 배출의 효과가 지연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후 위기에 대응할 때 후세대에게 대부분의 편익이 돌아가더라도 현세대가 기후위기 완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지금도 기후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그 속도가 더 심해질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 세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가 설국열차처럼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현세대가 책임을 분담하고, 어떻게든 문제를 완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 인류 존속을 논의할 때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점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인류의 존속이 다른 생명체에게 일으키는 고통보다, 현존하는 인간이 느끼는 인류 존속의 중요성이 더 중요한가? 늘 그렇듯, 이 문제를 판단할 만한 측정 기분은 없다. 그러나 인류 존속이 주는 삶의 의미 때문에 고통도 일으킬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은 내가 보기에 아주 생생한 현안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환경과 비인간 동물에게 가하는 다양한 고통도 함께 다룬다. 고통이나 행복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어서 인간의 행동을 단순히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계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합계를 낸다면 최소한 플러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인간이 환경과 다른 생명에게 남기는 긍정적인 영향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인류는 멸종해야 할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났더니, 멸종해야 할지 아닐지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벌써 충격적이다. 인류의 존속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냐는 문제가 생생한 현안임을 깨닫고 두려워진다.


멸종 여부를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중요한 깨달음이 되었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인류 존속이나 멸종의 정당성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 이 문제를 계속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번에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주제의 복잡함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인류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고, 그 사실이 이 문제가 얼마나 복합적인지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말하듯 나 역시 인류가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지만, 멸종보다는 존속이 타당하다는 의견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선택과 실천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읽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어떤 문제를 집요하다고 할 정도로 끈질기게 따라가 보는 과정은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나는 이런 질문을 평생 파고드는 철학자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