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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서재
  • 나오미와 가나코
  • 오쿠다 히데오
  • 15,750원 (10%870)
  • 2015-05-20
  • : 6,313

혹시라도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놓치게 될까봐 종종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과 방영 예정작을 살펴본다. 이번에도 하반기 방영 예정작을 둘러보던 중에 <당신이 죽였다> 예고편을 보다가 내용에서 왠지 기시감이 들었다. 작품 소개를 찬찬히 살펴봤더니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나오미와 가나코>가 원작이라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큰 스토리라인과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이 나서 <당신이 죽였다>를 보기 전에 책을 다시 한번 읽기로 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제거하기로 두 친구가 공모하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마무리될지 짐작할 수가 없어서 계속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오쿠다 히데오 치고는 좀 허술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중후반부터 책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조마조마하게 다 읽고 나니 “결말을 어떻게 할지 작가도 마지막까지 고민한 소설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마지막 페이지에 붙어있었다.


성격은 굳이 말하자면 정반대다. 가나코는 부드러운 데다가 조심스러운 편이고, 나오미는 당차고 딱 부러진 구석이 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일 년에 몇 차례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관계는 여전하다. 아마 평생 친구일 거라고 나오미는 생각했다.


“본인이 할 수 없다면 부모 형제가 대신 보복해요. 예를 들어 만약 내가 남편한테 폭행을 당했고, 내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상태라면 큰오빠가 캐나다에서 달려와 처리해 줄 거예요.”

“굳이 캐나다에서 와서요?”

“당연하죠. 가족이 없다면 가까운 친구가 도와주죠. 그게 우정입니다. 아닌가요?”


나오미와 가나코는 서로에게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다.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나코를 안타깝게 여기는 나오미의 마음과 그런 나오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가나코의 모습이 처음에는 안타깝다 못해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나오미의 고객인 리 사장의 입에서 ‘보복’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희망이 좀 보였다.


‘어젯밤에는 정말 고마웠어. 걱정시켜서 미안. 나는 괜찮아. 얼굴의 부기도 많이 가라앉았어.’

그 짧은 내용에 나오미는 슬픔이 솟구쳤다. 이 간결한 문장을 쓰는 데 삼십 분이나 걸렸을 리 없다.


10년 전에 이 소설을 읽을 때는 폭력 상황에서 벗어날 시도를 하지 않고 그저 주변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가나코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오미의 말대로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었고,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가나코의 말을 읽으면서도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이별을 고했다가 죽음을 당했던 많은 사건들을 봐서 그런지, 가나코의 상황이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로 느껴져서 두 사람의 공모에 더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다쓰로가 살아 있는 한 가나코는 계속 위협을 받는다. 그렇다면 다쓰로를 죽이는 것은 중요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어떻게든 가나코를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 꺼내주고 싶은 나오미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지만, 가나코는 이미 너무 무기력한 상태다. 가나코 본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모자라 신고하거나 도망치면 가족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남편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결국 한 가지로 모아진다.


“가나코가 바라는 건 뭐야?”

“평범하게 살고 싶어. 밤이면 꼬박꼬박 잠을 자고 맛있는 물만 먹을 수 있으면 돼.”

지금의 가나코는 평범한 일상조차 소중한 것이다.


언제 갑자기 돌변해서 주먹을 휘두르고 뜨거운 걸 끼얹을지 모르는 남편과 사는 가나코의 소원이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나오미와 비슷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초반에는 아무리 그래도 죽이겠다니 너무 급발진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했는데, 읽을수록 당연한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이 드는 악랄한 남편이었다. 


‘죽인다’는 말을 피하고 싶어서 ‘제거’라는 말로 바꾸기로 했다. 표현의 문제는 중요하다. 특별히 다쓰로를 죽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본인이 병사하거나 자살이라도 해주는 것이다. 그게 불가능하니까 차선책으로 이쪽이 제거하는 것이다.


애초에 남편을 죽이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도 두 사람이 가나코의 남편에 대한 증오나 복수심을 담아서 죽이겠다고 결의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가나코가 예전의 평범한 생활을 되찾을 수 있도록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평범한 삶에 가장 해가 되는 뭔가를 제거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나 생각하던 나도, 나오미의 말에 완전히 설득 당해 나중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기도 하는 남편 제거 계획이 무사히 실행되기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나오미와 가나코>를 읽었더니, <당신을 죽였다> 예고편에 나왔던 ‘가장 절박한 공모, 가장 불안한 행복’이라는 말이 이 소설을 가장 잘 나타낸 말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내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런지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인물, 다른 장면에 더 공감하며 읽었다. 예전에 이 책을 이미 읽었거나 아직 읽지 않았거나, 영상으로 보기 전에 먼저 읽어 두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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