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쿠온 출판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17년이었다. 정확한 대회명은 기억이 안 나지만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가 과제였던 번역 콩쿠르의 안내에서 이름을 처음 봤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와 다른 작품 하나를 더 번역해서 제출하는 게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는데 나는 ‘쇼코의 미소’와 ‘신짜오 신짜오’를 번역했었다. 나름 2년 반 동안의 외노자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넘겨짚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내가 해석과 번역의 차이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결과는 볼 것도 없이 낙방이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일본에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쿠온 출판사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떤 책들이 출간되었는지 찾아봤었다. 그래서 이번에 그 쿠온 출판사와 한국어 책을 다루는 ‘책거리’를 함께 운영 중인 김승복 대표의 책을 더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동안 다른 부러운 점도 많았지만 내가 제일 부럽다고 느꼈던 건, 이런 부분이었다. 시작 전에 지나치게 오래 고민하지 않고 일단 해나가면서 필요한 고민을 하는 방식이 좋겠다고, 늘 생각은 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바로 결정해서 진행하는 추진력이 마냥 부러웠다.

‘책거리’는 요일마다 점장이 다른데, 그 점장들을 섭외하는 과정도 흥미진진했다. 타이밍이 착착 맞아 자연스럽게 합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삼고초려로 힘겹게 얻은 사람도 있었다. 나였다면 첫 거절에 아쉽다고 바로 물러났을 것 같은데, 이렇게 끈기가 있어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며 읽었다. 끈기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 자체를 소중하고 어렵게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 때로는 읍소에 가까운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 분은 거절당하는 걸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해였다. 거절을 당하면 기운이 쭉 빠지는 건 마찬가지라는 부분을 읽으며 왠지 동질감을 느꼈지만, 아마 회복탄력성이 내 몇십 배는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책을 만드는 일도, 한국어 책을 파는 책방을 운영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울 게 없을 것 같은데, 저자는 그 일들을 기꺼이, 심지어 여러 일을 더 벌이기까지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내용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새삼 느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책과 엮인 여러 일들을 해내는 분들이 있어서 나처럼 독자일 때 제일 즐거운 사람들이 좋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강 작가의 책을 시작으로 쿠온 출판사는 마침내 20권이나 되는 <토지> 일본어 완역본을 출간했다. 전체를 읽는 것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품이 들었는데, 우리말도 아닌 일본어판으로 출간이라니. 출간 허락을 받고 번역을 하고 디자인을 하고 마침내 책으로 완성하는,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던 그 과정을 보면서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나온 완성본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는 친구들에게 그동안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었나 잠시 돌이켜봤는데, 걱정은 아니지만 딱히 응원도 아니었던 것 같아서 반성했다. 새로 뭔가를 시작하려는 친구들에게 늘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만 했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응원도 덧붙여야겠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이 생겨서 책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다가도 서울국제도서전에 한번 다녀오면 좀 안심이 된다. 세상에는 책을 만드는 사람도, 읽는(사는) 사람도 이렇게 많다는 걸 눈으로 보고 나면 책과 관련된 분야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쿠온 출판사와 책거리를 통해 일본에 한국문학과 문화를 알리는 이야기를 펼쳐 놓을 때마다, 저 열정과 실행력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감탄하면서 읽었다. 요즘도 일본에 소개하고 싶은 좋은 소설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으니, 앞으로도 오래오래 일본에 한국문학을 전할 수 있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아직은 계획이 없지만 도쿄 여행을 가게 되면 ‘책거리’에 들러 <쇼코의 미소>와 전체는 아니겠지만 <토지>를 사오고 싶다. 그날 어떤 요일 점장을 만나게 될지 벌써 두근두근하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