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고, 그나마도 혼자서 떠날 때가 많다. 보통 현생에 시달리다 지쳤을 때 여행을 떠나는데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건 일보다 사람일 때가 많아서 철저히 혼자 쉬다가 오고 싶어서 그렇다. 아무리 편한 사이라도 가족이나 친구와 떠나면 여행보다 사람에게 신경을 쏟아야 할 때가 많아서, 처음 가는 곳이나 쉽게 갈 수 없는 곳은 꼭 혼자서 간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돌아다니다 보면 다시 돌아가서 그럭저럭 사회성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
이 책을 읽기로 한 이유도 표지에서 본 ‘65살, 혼자’라는 키워드 때문이었다. 나중에 할머니가 돼서도 이렇게 혼자서 자유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가끔 걱정하던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여행기였다.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혼자 떠나는 나와 달리 이 책의 저자 쨍쨍은 여행지에서 여러 사람과 부대끼기 위해 혼자 떠나는 느낌이었다. 예상과는 달랐지만, 많은 사람과 부대끼는 걸 질색하는 내가 (아마 평생) 해볼 일 없는 여행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염원하던 세계 여행을 위해 26년 간의 교직 생활을 정리하고 여행길에 오른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을 가진 분이라는 건 알았지만, 초반 에피소드 두 편을 읽으면서는 동공지진이 났다. 마흔에 인도에서 만난 19살 많은 영국 히피와의 불같은 연애(한 달)로 퇴직까지 고려했던 이야기를 힘들게 넘겼더니, 억류에 가까웠던 영국 입국 심사 에피소드가 이어져서 내가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 건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있는 사진 속 그늘 한점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쨍쨍의 얼굴이었다.

좋은 문장인데 이 부분을 읽을 때 내 심기가 썩 편안하지 못했다. 앞서 얘기했던 영국 입국 심사 에피소드 뒤에 나온 말이었기 때문에. 영국 입국 심사에 대비해 사전 조사를 하면서 ‘절대 친구 집 주소를 대면 안 되고 꼭 호텔 주소를 댈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중요한 호텔 주소를 미리 찾아두지 않아서 몇 시간이나 방에 갇혀서 취조에 가까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며 내가 여러 번 머리를 싸맸다. 깜빡할 게 따로 있지!!! 하면서 나는 괴로웠는데 사진 속 쨍쨍의 얼굴은 이번에도 아주 밝았다. 초반에는 내가 소인배라서 이렇게 괴로운가...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쨍쨍 스타일에 적응을 했다.

세계 여행을 하는 중에도 연애 이야기가 빠지지 않아서 처음에는 금사빠, 불나방 같은 말들을 떠올리며 읽었는데,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에는 그냥 사랑이 많은 분이구나,로 감상이 바뀌었다. 여행을 위해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할 때 다른 어떤 현실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헤어짐을 괴로워하는 모습에서도, 여행지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모습에서도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혼자’라는 키워드가 무색하게 쨍쨍의 여행에는 등장인물이 많다. 여행지의 정보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 인물들이 쨍쨍의 희노애락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들이 훨씬 많아서 흥미로운 여행기였다. 팁 문제로 쪼잔하게 굴던 안토니오 때문에 10년 넘게 스페인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쨍쨍은 산티아고 순례자길에서 또 다른 스페인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다 못해 급기야 쪼잔한 건 안토니오가 아니라 본인이 아니었을까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슬퍼하거나 분노할 때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인류애를 회복하는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도 뜨끔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선입견과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모양이라고 반성하면서, 나와는 여러 면에서 완전히 다른 쨍쨍도 같은 상황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미리 대형 스포(크게 의미는 없음)를 하자면 거의 책 마지막까지 꼰지라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지금도 좀 꼰지랍게 여행 중이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책 초반에는 왜 그러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나중에는 상황이 저래도 어떻게든 해결하시겠지 하는 믿음이 생겨서 좀 마음 편하게 읽었다. 수습을 할 수 있으니까 좀 꼰지라운 여행을 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건 다른 얘긴데, 나름 경상도 네이티브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도 ‘아슬아슬하다’는 뜻을 가진 꼰지랍다는 말은 이 책에서 처음 봤다.

요즘도 세계를 자유롭게 다니는 쨍쨍은 제주도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집이라는 말보다 베이스캠프가 어울리는. 쨍쨍랜드는 쨍쨍의 집인 한편, 다른 여행자들의 집이기도 하다고. 별명처럼 옷차림도 쨍할 때가 많은 평소 스타일로 미루어보아 쨍쨍랜드는 왠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저자의 블로그를 찾아봤다.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핑크 배경을 보니 동명이인인지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최신 글에서 이제는 66세가 된 쨍쨍이 여전히 밝은 얼굴로 강아지 옆에서 요가 다운독 자세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슬쩍 웃었다. 성격, 스타일, 여행 방식 등 여러 방면에서 나와 쨍쨍은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책 초반에는 그래서 힘들더니 나중에는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화려한 착장에도 묻히지 않을 밝은 얼굴로 앞으로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많이 들려주시면 좋겠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