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학교 앞에서 간혹 신기한 책자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떨 때는 종이 한 장일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제법 여러 장이 엮인 책자일 때도 있었다. 그 안에는 괴담을 포함한 온갖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나온 것처럼 어릴 때 들은 말은 힘이 세서, 그 중에 몇 가지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기억을 할 만큼 뇌리에 깊게 남았다.
이번에 <뇌의 흑역사>를 읽으며 그 중 일부는 사실일지도 모르고,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아니라 그때는 몰랐을 뿐 뇌와 관련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아닌 건물과 결혼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같은 건 어린 나이에도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책에서 비슷한 케이스의 실존 인물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런 케이스를 포함해서 이 책에는 뇌와 관련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케이스가 담겨있다. 다만, 모든 이야기가 실존 인물의 실제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경뇌과학자인 저자는 모든 케이스를 단순히 흥미 위주로 다루고 있지 않으며 누구에게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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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모든 일을 다 숙고하고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자율 주행 같이 결정하는 부분이 있다니. 심지어 그 결정에 대해 뇌가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한다는 예시들을 읽으며 내 짐작보다 뇌가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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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구성 요소 중 어느 부분이 고장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주 다양한 케이스를 소개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다만, 저자도 말했듯 실존 인물의 실제 케이스를 다루고 있어서 흥미진진이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좀 있겠다. 나는 12가지 챕터 중 강박, 인격 등에 특히 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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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느끼는 환지통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섬뜩했었는데, 책에서 환각지와 신체 도식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그 이야기가 어떤 가설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알면 알수록 뇌와 신체 기관 사이의 매커니즘은 정말 복잡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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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심하지는 않지만 강박이 있어서 이 파트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내가 하는 게 강박사고에서 비롯된 강박 행동인지, 많이 심한 건 아닌지 걱정하며 읽었는데,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책의 뒷부분에서 이 점을 짚어줘서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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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궁금하게 생각했던 다중인격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내가 가진 다양한 성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내면에 있는 모든 인격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잘 통합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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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세보 효과는 굉장히 자주 접하는 말이라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지만 처음 알게된 사실도 있었다. 진짜 약을 먹고 느끼는 효능의 일부도 도움이 될 거라는 심리적인 부분에 기대고 있다는 내용을 읽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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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인증은 사실 현실에서도 책이나 영화에서도 종종 보게 되는 현상이라 익숙한 개념이었지만, 그 실인증의 종류가 이렇게 방대한 줄은 몰랐다. 특히 신기했던 건 시간실인증이었다.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던 개리의 사연에 막막한 기분이 들었는데, 의외로 자연스럽게 괜찮아졌다는 결과를 읽으며 뇌는 정말 신비롭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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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는 앞부분에 소개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강박을 다루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가진 강박도 보통에서 과잉 사이 어딘가에 있을 뿐 그 정도와 빈도를 봤을 때 장애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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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면 뇌든 신체든 영원히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기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내 뇌의 아주 일부분에 아주 작은 손상만 생겨도 어마어마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여러 케이스들을 읽으며 짐작해볼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뇌든 신체든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연구가 꽤 많이 진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는 진행이 된 부분보다 건드려보지도 못한 부분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복잡하기도 하고,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새롭게 밝혀지는 것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듣도보도 못한 다양한 증후군이 있다는 것에도, 앞으로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 중에는 절망적이거나 너무 괴로운 것들도 많아서 앞으로도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돼서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