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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서재
  • 고전환담
  • 윤채근
  • 15,300원 (10%850)
  • 2023-11-29
  • : 269

인문역사 책을 주로 만들던 기관에 다닐 때 저자들로부터 원고를 받을 때마다 두근거림과 함께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면 분명히 흥미로운 내용인데 아무래도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다보니, 전문가들에게는 그렇지 않겠지만 나처럼 그냥 역사를 좋아하는 일반인에게는 아무래도 어려워서 내용 파악이 어려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그 원고를 속속들이 다 파악한 후에 편집해야 하는 자리라서 더 부담스러웠다. 책이 완성되는 내내 여러 사료들과 논문들을 뒤적거리면서 가능하면 다음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를 만드는 자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책을 완성하고 나서야 전문적인 학술서들이 왜 어려울 수 밖에 없는지, 왜 근거를 촘촘하게 제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사료를 두고도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거나, 단호하게 결론을 낼 수 없는 민감한 사안들도 많아서 활자로 남는 책은 아무래도 보수적으로 쓰여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제한된 사료가 남아있다는 건 빈 부분을 채울 상상을 펼칠 여지가 많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어서, 일이 끝나면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들을 종종 찾아 읽었다. 거의 모든 문장에 출처를 주석으로 달아야하는 원고를 보다가 조금 더 자유롭게 쓰여진 소설을 보면 살짝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 <고전환담>을 발견하고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냈을지 기대하며 펼쳐들었다.


<고전환담>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쓴 장편 소설이 아니라, 폭넓은 시대를 배경으로 각각 다른 사건과 인물을 주제로 쓴 단편 소설을 엮었다. 26개의 이야기를 3부로 나누어 담고 있는데,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 이후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과 사건들도 등장해서 흥미롭다.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한 부분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전투를 벌였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화자라서 신선했다. 각 이야기가 끝나면 ‘역사와 문헌’이라는 코너를 통해 관련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문헌 자료를 밝혔다. 더불어 사료에 근거해서 기술한 부분과 창작한 부분을 구분해 두어서 방금 읽은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덕무가 쓴 ‘김은애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흥미로웠다. ‘김은애전’을 읽으면서 혜경궁 홍씨와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뿐만 아니라 책에 수록된 소설들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상상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책에 등장하는 역사속 인물들이 각 지방의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평강 공주가 자기 소개를 하면서 내래 어쩌고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저항없이 터졌다. 예전에 찰진 사투리 대사 덕분에 더 재미있었던 영화 황산벌을 볼 때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위에 필사한 부분은 원효대사의 말이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 사료에 근거한 부분과 상상이 더해진 부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제일 마음에 오래 남았던 글은 정의공주가 아들 안빈세에게 쓴 편지였다. 아버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던 현장을 그려낸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 그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만든 글자로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는 설정이 왠지 마음을 더 찡하게 만들어서인지 26편의 글 중에 이 글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건이나 인물도 소설로 각색해서 보니 더 생생하고 박진감이 있어서 새로운 느낌이었다. 항상 역사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있었던 ‘역사와 문헌’ 덕분에 그런 궁금증도 바로 해소가 되어서 좋았다. 근거가 되는 사료를 나도 읽어보면서 이 책의 저자가 사료의 빈 부분을 어떻게 채웠는지 따라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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