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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사의 선호:하는 책들
  • 천사가 날 대신해
  • 김명순.박민정
  • 15,300원 (10%850)
  • 2024-06-18
  • :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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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날대신해 #작가정신 #김명순과박민정


▶️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시리즈 다섯 번째 책. ’소설, 잇다‘는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잇는 ‘작가정신’의 문학 기획이다.

근대 문학 작품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고 굳이 찾아 읽지도 않는데, 이 시리즈 덕분에 읽게 되었다. 김명순 작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한 세기를 뛰어넘는 두 작가, 김명순과 박민정을 왜, 어떤 기준으로 연결 했을까. 책의 표제작 ≪천사가 날 대신해≫를 박민정이 김명순의 ≪의심의 소녀≫에 착안해 썼기 때문일까. 나는 한참 고민했다. 그러다 두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두 작가의 작품이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둘 다 인간 소외를 다룬다는 점. 자유롭고 주체적인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는 점에서. 

김명순의 작품에선 여성 소외의 상대가 남성 중심적 사회라면, 박민정의 작품에선 소외의 얼굴이 남성을 넘어 더 다양하고 다각화된다는 점이 둘의 차이인 듯하다. 특히 ’같은 여성에 의해 여성 소외가 심화된다‘는 점을 이야기한 건 좀 충격이었다.


▶️ 김명순 작가의 세 작품에선, 봉건적 가부장제에 매이지 않고 자유연애를 갈망하는 여성, 식민지 조선 여성에 대한 인식에 갇히지 않고 주체적인 인물로 살길 원하는 여성, 그러나 부자연스런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거나 외로운 결말을 맺고 마는 여성이 나온다. 이들은 남성 중심 사회 구조로부터 소외 받는 대상이다. ≪의심의 소녀≫에선 조 국장의 부인이자 가희 엄마인 여성이, ≪돌아다볼 때≫에선 자유롭고 주체적인 사랑을 원했지만 끝내 다른 남성과 혼인해야 했던 소련이, ≪외로운 사람들≫에선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순희와 순영이 그러하다. 

나는 이 인물들이 어쩌면 김명순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시절, 여성을 시대상에 가두지 않는 ‘과감한 상상력’을 글로 써냈고, 그로 인해 많은 억압과 학대를 받았으니까. 그 시대가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하고 폭력적이었는지 작가의 삶과 작품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작가가 고국을 떠나 일본에서 생을 마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다.


▶️ 그런데 이런 소외의 잔재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나는 여성이 받는 구조적 억압과 차별을 고발하는 책을 최근에도 읽었다. 박민정 작가는, 이 잔재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범위와 각도를 더 확장시킨다. ≪천사가 날 대신해≫의 ’세윤‘과 ‘로사’라는 인물을 통해서, 여성 소외는 ’같은 여성에 의해 심화되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세윤을 괴롭히고 배신했던 사람은 같은 여성 로사였다. 세윤이 전 남편과의 이혼 때문에 힘들어하긴 했어도 작품은 그 점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로사가 세윤을 이층침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섬뜩한 장면은 ‘여성이 취약한 구조‘를 같은 여성이 더 심화시키는 구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나는 오늘날 ‘명예남성’이라 불리는 여성을 여기에 대입해 보았다.

📍“머릿속에선 세윤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선 선역도 악역도 여자야. 우리가 남자들이랑 깊은 관계 맺을 일 있어? 너나 나나 조심해야 하는 건 이제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292). 


▶️ 김명순 작가의 작품은, 박민정 작가의 작품에 비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고어와 한자어가 많았고, 당시 사회문화적 배경에 비추어 읽는 번거로운 수고도 필요했다. 그러나 김명순 작가의 작품을 읽는 일은 세기를 넘어 문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굉장히 유의미한 독서였다. 근대 문학을 발굴해 소개하고, 현대 문학을 잇대어 그 흐름을 확인하는 이 작업이 얼마나 고귀한지...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시리즈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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