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1
윤도사의 선호:하는 책들
  • 움직임
  • 조경란
  • 11,700원 (10%650)
  • 2024-05-07
  • : 189



“나에게 새 가족이 생겼다.” 소설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화자 신이경은, 엄마가 죽은 후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외할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내려오고, 그 곳에서 이모와 삼촌과 새롭게 가족이 된다. 그녀의 나이 스무 살에.
핏줄에 의해 한 집에 있지만, 정작 이들은 ‘식구’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평소 함께 밥을 먹지도 않고 대화를 나누지도 않으며, 심지어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거나 이름을 가까스로 떠올려야만 한다. 이모는 떠나기 전날을 제외하곤 단 한번도 이경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준 적이 없다. 이경이 보기에 이 집은 “가족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이상한 동물원”이다. 이경은 이 집에서 여전히 외롭고 지독하게 혼자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핏줄로 연결되었지만 어쩌면 ‘진정한 가족’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피가 섞였지만 타인보다 못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반면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진짜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가족’이라는 게 뭘까 곱씹어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가족이지만, 그럼에도 이경은 가족이길, 가족이 되어가길 희망하면서 이 집에 계속 머무른다. 떠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채 그 집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찾으려 애쓴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천둥 번개가 치는 궂은 날 "나도 같이 가요”라고 말하며 삼촌을 따라 나선다.
할아버지가 죽고, 이모가 떠나고, 다시 혼자 남은 것 같은 이경에게 ‘삼촌의 여자’가 새로운 가족이 된다. 이제껏 외갓집 안으로 쉬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이경에게마저 냉대받았던 여자. 삼촌의 아이를 배에 품은 그녀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떠난 이후 이경의 곁에 남아 이경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리고 할아버지 사진, 삼촌과 그녀, 이경은 밥상을 중심으로 앉아 식사를 한다. 비로소 진정한 ‘식구’가 되는 그 시작에서 소설은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나에게 ‘가족’은 마냥 벗어나고 싶고 해체하고 싶은 개념일 뿐이었는데. 혈연이나 타인에 의해 엮인 ’불가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이경의 ’새로운 가족‘을 보며 그 강박을 조금은 깨뜨려 보게 된 것 같다. 피가 섞이지 않은 타자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건 집에 머무르기를 결정하는 것, 그리고 타자에 대해 자신을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가족의 개념이 해체되고 의미가 깨지고 있는 이 때에 소설은 나를 움직여 가족을 만들어가는 그 ‘움직임’을 호소하고 있는 것 같다.

📍“꽃씨를 뿌릴 때쯤 아기는 태어난다. 이모가 빠지기는 했지만 모처럼 식구가 다 모였다. 사진 속의 할아버지, 삼촌과 그녀. 그리고 나. 밥상은 꽃밭처럼 화려하다. 오늘은 할아버지 생신날이다.” (103)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