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게에 가서 바지를 살 때 ‘내 엉덩이는 왜 이렇게 크지? 엉덩이가 너무 쳐져서 내 뒷태는 볼품없어. 왜 나는 이 바지를 잘 소화하지 못할까?...‘ 실망하고 수치심을 느끼며 심지어 내 몸을 혐오했던 적은 없었는가? 타인의 훌륭한 몸매를 부러워하고, 그런 몸을 갖기 위해 애써본 적은 없는가?
나는 작은 키에 왜소한 체형, 반면 엉덩이는 큰 몸을 갖고 있다. 바지를 살 때 내 몸에 맞는 바지를 사본 적이 없는 ‘저주 받은’ 몸. 길이가 맞으면 엉덩이가 꽉 끼고 엉덩이가 맞으면 길이가 길고.
체구에 비해 큰 엉덩이는 언제나 컴플렉스였다. 타고난 체형을 바꾸기 어렵다면 ’애플힙‘이라도 만들어보자! 싶어 열심히 운동과 다이어트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만족할 만큼 목표를 이뤄본 적이 없었다. 내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적도,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 적도 없었다.
그러던 중 이제껏 한 번도 묻지 않았던, 물을 생각도 없었던 질문을 이 책이 나에게 던지는 것이다. 왜 엉덩이가 크고 쳐지면 안 예쁘다고 생각해? 사려던 바지에 딱 맞는 게 ’정상적‘인 엉덩이일까? 운동의 본래 목적이 볼륨 있고 탄력적인 엉덩이를 만드는 데만 있을까?
적당한 사이즈, 봉긋한 볼륨, 셀룰라이트가 없는 매끈한 피부, 얇은 허리를 돋보이게 하고 섹시미를 강조하는 라인, 어떤 바지라도 찰떡 같이 소화해 내는 엉덩이를 누가 ’정상적‘이라고 규정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책이 나에게 던지는 이 질문에 직면해 있었다. 처음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하다 점차 내 관념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책은 엉덩이에 관한 고정관념의 기원과 계기를 추적해 가며, ‘누군가에 의해 규정된 엉덩이를 해체하는 책‘이었다. ‘정상적’인 엉덩이, ’섹슈얼하고 여성적‘인 엉덩이, ’이상적이고 올바른‘ 엉덩이... 백인, 남성, 이성애자에 의해 규정된 엉덩이의 의미로부터 비로소 ’엉덩이를 해방 시키는‘ 책이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4장 <평균의 탄생>과 5장 <탄탄하여라>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정상성‘의 기준이 된 ’노마와 노먼‘, 여성복 바지 사이즈의 비밀, 규격화되고 제조화된 엉덩이를 위해 운동을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 등. 4,5장은 내가 엉덩이에 관해 갖고 있던 불편한 인식이 어디에서 기인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장이었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날카롭지만 단단하다. 툭 가볍게 얘기하지만 상당히 딥deep하다. 저자의 통찰도 영감을 준다.
‘엉덩이’뿐 아니라, 해체와 해방이 필요한 모든 주제에 이 책을 펼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자! “누구한테나 있는 것인데, 왜 이렇게 난리들인가?“ ”그저 엉덩이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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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즈 오브 스틸>은 여성들에게 강한 엉덩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비디오 제목에 내포된 의민느 그 이상이다. 인간의 몸에 붙은 살의 한계를 초월하는 엉덩이를, 완벽하지 못하고 치욕스러우며 탈출 불가능한 우리의 신체로부터 엉덩이를 해방해주겠다는 것이다. 강철 엉덩이는 인간의 엉덩이가 아니다. 제조된 엉덩이, 규격화된 엉덩이다. 연마되고 완벽하게 다듬어진 엉덩이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 확인하고 있듯, 몸은 규격화될 수 없다. 살은 언제나 저항한다.” / 244
📍“우리의 몸은 제멋대로예요.” 치수에 관해 설명하던 중, 그가 내게 상기시킨다. 제못대로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깊게 남았다. 우리 몸은 반항아다. 치수에, 자본주의에, 급을 나누고 위계를 세워 통제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에 저항한다. 몸이 제멋대로라는 생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로 느껴지기에 호소력이 크다. 나는 나이트크림을 바르고, 스쾃을 하고, 잘 맞지 않는 바지 안에 내 몸을 욱여넣으려 애쓰지만 그래도 내 몸에는 주름살과 셀룰라이트와 아무리 봐도 엉망이르 느껴지는 엉덩이가 있다. 내 몸은 그것을 통제하려는 내 노력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