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생 오름이 처음엔 낯설었다.
지도를 찾아보고 나서야 아~ 여기였구나 싶었다.
작년에 영실로 한라산을 올라 어리목쪽으로 내려왔는데 그때 조금만 더 가면 어승생 오름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갈까말까 고민했던 오름이었던 것을 이제사 알았다. 그곳이 한라산의 형님뻘 되는 곳이라니....
제주도에서 가운데에 높게 솟아 있는 한라산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머지 오름들이 만들어진줄 알았는데 어승생 오름이 먼저 만들어지고서 한라산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승생 오름도 역시 두차례의 화산분출로 만들어진 오름이라고 한다.
제주에는 약360여개의 오름이 있는데 화산의 분출로 만들어진 봉우리들이다. 이 오름들은 등산코스에 관한 책은 나와있지만 오름 하나하나의 제대로된 연구가 안되어 있다고 한다. 이번에 오름 연구의 첫번째로 어승생 오름을 시작으로 발생시기와 지질, 동식물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어승생 오름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갖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가슴아픈 역사적 사연도 품고 있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벌이면서 일본 본국을 지키기 위해 전투력 배치를 실시해 전쟁의 한가운데로 끌여들이여 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주 도민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켜 동굴을 만들게 하고 패치카를 만들게 하는 등 방어시설을 만들었다. 어찌나 튼튼하게 만들었던지 미군들이 없애려고 했는데 안없어져서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자연을 자기네들 마음대로 전쟁터로 만들려고 했던 일본인들의 극악함을 또 한번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어승생 오름에는 예전에는 많았으니 사람들의 무분별한 체취로 사라져버린 동식물들이 있다. 어승생 오름에는 흑오미자가 많았는데 사람들이 한가마니씩 따가지고 가고 했는데 나무에 올라가서 따기가 불편하니까 아예 베어서 열매를 땄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흑오미자 나무를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소리도 많았는데 오소리가 곰과 비슷해서 곰 대신 오소리의 쓸개와 기름이 좋다고 마구 포획을 하는 바람에 오소리도 사라졌다고 한다. 사람들의 욕심이 불러온 결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60년대에는 어승생 오름에 저수시설 설치를 하여 중산간 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공급을 하려는 계획을 했는데 그때 마침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다 만들지도 못했는데 기공식을 먼저해버리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공사를 날자에 맞추다보니 부실공사로 인해 여러가지 사건 사고가 많았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전시행정의 변함 없음에 씁쓸함이 묻어난다.
어승생 오름에는 물이 많이 흐르는데 그 물이 흘러서 알작지 해변까지 간다고 한다. 그리고 해변에는 화산석들이 굴러내려오면서 둥글둥글해진 몽돌들이 깔려있으니 화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몽돌들의 시작을 생각해보면 12만 년 전에는 지구 깊숙한 곳에 있다가 폭발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와서 굳어진 돌이 아닌가. 그리고 오름에서부터 바다쪽으로 구르고 굴러서 내려온 돌이다. 새삼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즈음되면 빨리 어승생 오름에 가보고 싶어진다. 어리목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오르는 길도 힘들지 않다고 하니 더욱더 가보고 싶다. 오르는 길은 예전에 소와 말을 방목하기 위해 소와 말이 이동하기 편하도록 만들었던 길이라고 하니 오름을 오르면서 이것을 생각하면 오르는 기분 또한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어승생악 정상에서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고 일본이 남기고 간 상처를 보며 제주의 아픈 역사에 머리를 숙일 것이다.
이제 주변에서 한라산을 간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어승생 오름도 빼먹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도 함께 추천해서 어승생 오름을 오르는 길을 더 의미있게 만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