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한걸음더 2009/11/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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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 어니스트 볼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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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 - 2003-06-25
: 329
긴 인류의 역사 가운데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을까? 저자 볼크먼은 머리말에서 그러한 기간이 대략 3420년의 인류 역사 중, 단 268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이는 토머스 홉스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제를 이끌어 내는데 충분한 수치였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이다."
아마 저 268년이라는 전쟁이 없었던 기간 중에도 인류는 기록에 누락된 전쟁을 수행했거나, 전쟁처럼 보이지 않는(예를 들면, 우리가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 부락간의 싸움 등) 전쟁을 수행하거나, 아님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면서 보내었을 것이다. 그만큼 전쟁은 인류의 본성의 하나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인간과 땔 수 없는 존재로 역사에 남아있다.
그리고 여기에 그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무기가 소개되고 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무기가 아니라, 무기 자체를 개발하는, 바로 과학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과학의 어두운 공생관계"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 결정적인 무기를 개발하려는 야욕이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고대의 발리스터를 비롯한 공성 무기로 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대량살상무기인 핵무기, 화학무기까지 그 예를 들면서 말이다. 과학은 필요에 의해 발전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과학은 순수하게 과학자의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 의해 발전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필요에 의해 발전한다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더욱 타당한 듯 보인다.) 전쟁은 다른 무엇보다도 결정적이고 시급한 필요임에는 분명하다. 전쟁은 그 자체로 가족과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 그리고 국가의 생과 사가 달린 문제이다. 과학자에게도 이보다 더욱 시급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러한 이유만으로 과학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발생한 후에 과학자들이 무기 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저자도 많은 과학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가면서 무기 개발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누구일까? 전쟁을 야기한 자, 즉 자신의 야욕을 죽일 수 없었던 소수 권력자들이다. 과거에 침략의 야욕을 숨기지 않았던 왕과 황제로부터, 교묘한 명분으로 자신들의 야욕을 숨기고자 하는 현대의 통치자들에 이르기까지, 진정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그들이다.
이러한 일들은 현대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굳이 기술과학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현대의 권력은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지만, 특히 자본적 측면, 쉽게 말하자면 돈에 의해 좌우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라도 기술과학, 사회과학 등 학문은 권력의 입맛에 맞추는 연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학진체제나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몇몇 경제 타당성 분석(비용 대비 편익 비율 검사) 또한 그러한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저널리스트가 저자인지라, 더욱 조심스럽게 글을 읽었다. 저널리스트는 기본적으로 알려지지 않는 정보를 전달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에 검증되지 않는 정보를 사용하거나 정보를 과장해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저널리스트에만 국한된 문제라고는 볼 수 없지만, 좀 더 그런 경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어떠한 글이라도 무비판적으로 읽을 수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전하려는 의도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순수한 과학, 더 나아가서 순수한 학문이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상일 수 밖엔 없는 것일까? 결국 과학을 비롯한 학문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그 가치가 달려 있다고 하겠다. 학문이 권력에 종속되는 경우에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 아닐까? 지식인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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