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가의 작업을 탐정의 작업에 비유하곤 한다(이 책에서도 영국의 유명한 탐정인 셜록 홈즈가 등장한다).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일을 탐구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그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과거)를 재구성하는 그 과정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은 여러면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이 다를 것이며, 또한 그들의 작업에 바탕이 되는 증거 또한 차이가 난다. 탐정이 주로 과학적·심리적 증거에 의존하는 반면에, 역사가는 흔히 사료라고 일컫는 역사적 자료에 바탕을 두고 그들의 작업을 수행해간다.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사료, 그 중에서도 이미지라는 특별한 형태의 사료이다.
흔히 사료라고 하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문서 형태로 된 기록물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저자인 피터 버크는 우리가 흔히 보조적 역할을 하는 사료로 취급하는 이미지들이 문서 기록물 못지 않게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미지란, 시각화된 자료를 통합적으로 뜻하는 용어인데, 회화나 판화와 같은 미술 작품으로부터, 조각상, 건축물 그리고 현대의 사진과 포스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포함한다. 저자는 이른바 예술품(즉, 이미지)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수많은 예를 들면서 이미지가 어떻게 역사의 현실(물질문명, 시대정신, 문화 등)을 드러내는 지를 설명하고 있다.
분명, 이미지로 되어있는 사료에는 문서형태로 된 기록물에 비교했을 때 가지는 장점이 있다. 문서의 형태로는 생동감있게 접근 할 수 없는 것들도 이미지 사료를 통해서는 더욱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서 기록자들의 관심에 포착되기 어려운 대상들도 이미지 사료에서는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역사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더욱 이미지로 된 사료가 효과가 있을 터인데(무엇을 말하는지 한눈에 인식하기 쉽다. 물론 그 해석의 문제는 예외로 하고 말이다), 인터넷을 포함한 대중매체가 발달한 현대에는 이미지에 접근하기도 훨씬 쉬워졌기 때문에 그 효과가 더 커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로 된 자료에는 몇가지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이 든다. 첫째로는, 특히 중세나 근대 초기의 예술 작품들에 해당이 될터인데, 대표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세나 근대 초기의 예술가들은 그 자신이 부유한 계층이거나, 그보다도 더 많은 경우에 있어서는 귀족이나 부유한 계층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그들이 제작한 작품들은 그러한 계층의 생각과 관점은 드러내 줄지 모르지만, 그보다도 훨씬 다수인 하위 계층의 생각과 관점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바가 거의 없거나 적을 수 밖에 없다. 저자가 분명 경고 했듯이 , 몇몇 작품으로 섣불리 일반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은 이런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둘째는, 현대와 좀 더 관련이 있을, 이미지의 수정, 왜곡과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그 옛날부터 의도적인 이미지의 왜곡은 계속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사진을 비롯한 여러 매체들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함에 따라 훨씬 교묘하게 사실적으로 왜곡 될 수 있다. "사진은 진실을 말한다"는 주장에 수긍할 현대인들이 몇이나 될까? 이미, 우리는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 신뢰를 잃어가고 있고, 그것은 후대의 역사가들이 사진이라는 사료를 자신의 작업에 활용하는 데에 큰 고민을 안겨 줄 것이다.
저자는 이미지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도 원전 비평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도상학적 접근, 심리학적 접근, 구조주의적 접근, 그리고 사회사적 접근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해 더욱 그 이미지에 대해, 그리고 그 이미지가 담고 있는 역사에 대해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확장해보면 이렇게 결론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때 그에 대해 더욱 잘 이해 할 수 있듯이 역사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때, 그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고, 그러한 다양한 접근 방법중 하나로써 아주 유용한 것이 바로 이미지를 통한 접근이라는 것이다.
<보론-영화 '발키리'에 대한 옹호>
이 책의 제9장 '증인에서 역사가로'를 보면 자신의 영화에 진정한 역사를 재현하고자 하는 영화 감독들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영화를 제작해 나갔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게 된다. 이런 내용의 글을 읽는 도중에 문득 최근에 봤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영화 '발키리'와 그 영화에 대한 내용을 담은 모 스포츠 신문의 기사가 떠올랐다. 그 신문의 기사는 독자의 질문에 대해 영화 전문인이 답변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기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독자가 ' 크루즈와 브라이언 싱어라는 유명 배우와 감독이 손을 잡았는데 왜 이렇게 잠이오는 영화를 만들었나요?'라고 묻자, 영화 전문가의 답변은 '주인공의 개인적인 감정적 요소가 부족했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물론, 좀 더 흥미로운 볼거리를 원하는 관객에게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고 그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싱어 감독의 진의가 무엇이든, 즉 역사를 담담하게 담으려 했건, 감정적 요소를 담으려 했으나 실패했건 간에) 나는 이영화에서 감정적인 요소가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당시 독일에 팽배했던 전제적 군국주의,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대항했던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히틀러의 벙커를 비롯한 군사 시설과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잘 드러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한 영화(또는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모순은 역사적 사실에 엄격히 입각한 사실주의를 추구했을 때에는, 관객은 그것을 따분하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관객은 자신들의 감정을 자극할 극적인 요소를 기대하나, 역사적 사실이 늘 그렇게 극적인 요소들로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또는 드라마)의 제작자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다루고 있는 것은 역사로서의 사실이고, 매체의 영향력이 큰 현대에 있어서는 자신들의 잘못된 해석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화가 신윤복을 다루고 있는 '바람의 화원', '미인도'라는 작품 때문에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인식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역사학자들이 신윤복은 남자였음이 분명하다는 발표를 하는 등의 헤프닝은 이러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