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AI 지식나무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숲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가이드.
방대한 AI 지식의 세계속의 굵직한 획을 그었던 기술들의 핵심만 모아 엮은 책이다. AI에 관심을 두고 있거나 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펴는 순간 펼쳐지는 재미덕분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하나하나 쉽지 않은 주제인지라 그동안 경험하고 학습했던 머릿속의 AI지식들과 비교하고 리마인드해가며 읽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 책을 펴는 순간 3장을 다 읽을 때까지 꽤 오랜시간동안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읽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이 방대한 AI의 역사 중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우선순위를 추려 책을 낼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한 주제 한 주제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굵직한 기술들이고 학회에서 긴 시간동안 활발한 연구대상이었던 주제도 있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인공지능의 원리, 뇌과학, 모델, 로보틱스와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을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한 분야에 쏟아져 나오는 논문만해도 Abstract 하나 소화하기 버거운 현실에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인가? 절대 한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님에도 AI의 세분화된 각 분야의 굵직한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은 저자가 2015년 7월부터 논문 및 뉴스 등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주제를 선택하여 기고한 것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책의 구성 또한 잡지를 읽는 기분이다. 마치 과거 마소지를 읽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무거운 주제여도 가벼운 느낌으로 읽을 수 있어 산뜻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AI에 대한 공포가 더욱 심해진다. 또 한편으로 이 무한한 가능성에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저자가 언급한대로 AI의 속도, 무경계, 창의성이라는 주제에 더욱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중 특히 속도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두말할 나위없이 두려운 부분이다. 나 역시 2016년 알파고 등장 이후 AI 분야에 대한 학습을 부단히 노력해왔었다. 처음에는 오차역전파법을 배우며 수학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미분연쇄라는 아이디어를 놓고 한국 교육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또 한편으로는 그 안에 미분 불가능이라는 주제에 대한 호기심을 갖기도 했으며 순간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음에도 AI의 망망대해에서 쫓아가야 할 지식들이 부지기수인지라 고찰보다는 습득에 중점을 뒀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 배움의 속도는 AI세계에서 유수한 연구자들이 쏟아내는 지식을 쫒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기본적인 CNN, LSTM, VAE, GAN 등의 모델에 자신이 좀 생기자 관련 분야의 논문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내에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쏟아졌다.
이내 논문의 흐름에 좀 적응할만하자 Attention, BERT 등이 등장하였고 그것들을 익히자 LLM과 생성모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남들이 자랑하듯 내놓는 아이디어의 노예가 된 느낌이었다. 하물며 이젠 다 내려놓고 LLM을 어떻게 기똥차게 써볼까라는 생각에 집중하고 있는 지경이라니…
AI의 최전선까지는 아니라도 그래도 나름 그 바닷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수준은 된다는 위치가 이 급류에 적응하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도대체 AI에 대해 지식이 전무한 사람은 얼마나 갑갑한 생각이 들까? 아니 아예 아무것도 모르면 오히려 안심이 되려는지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 책은 이런 AI속도의 위대함에 답답함을 느끼는 내게 잠시 휴식을 준 고마운 책이다. 다소 느린감은 있지만 예전에 잠시 떠올렸던 오차역전파의 문제점인 미분불가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여유를 줬다.
잠시 모델에서 벗어나 관련 기반 인프라의 발전에 관한 부분도 흥미롭게 둘러봤다. 올해 초 AI가 불러올 전력대란이 일으킬 다양한 문제점 그리고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또, 언제 실용화할만한 기술로 발전할지 늘 궁금한 주제인 양자 역학과 AI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원자 수준 시뮬레이션이라니 잠시 머릿속에서 공상과학 소설을 쓰고 있노라면 다가올 미래가 어렴풋이 보이기도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던가? 그간 꼭두각시 인형처럼 세상의 천재들이 내놓는 엄청난 기술들의 코어는 커녕 겉모습만 쫓기에도 뱁새가 황새 쫒는 격이었다. 배우는 순간에는 신박한 아이디어의 향연에 빠져 즐겁기도 했지만 어느새 방향을 잃은 느낌에 점점 들어가는 나이덕에 체력은 떨어져갔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허탈감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이 책 하나하나의 주제는 관련된 논문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대단한 주제이다. 그렇다고 일반 AI 교양서처럼 난이도가 쉬운 책도 아니다. 논문에 핵심이 되는 굵직한 수식들도 종종 등장하고, 논문의 핵심 아이디어들이 쉴새 없이 등장한다.
AI분야에서 이름 꽤나 떨치는 분들도 결코 이 책의 모든 주제들을 쉽게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만족스러운 것은 기술적인 핵심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리뷰 논문을 읽는 것 이상으로 각 분야의 획을 그은 기술들을 빠르게 섭렵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가급적 적은 분량의 수식과 핵심기술을 핵심만 빠르게 전달하는 저자 특유의 전달력이 놀랍다. 어려운 이론을 적절한 예시와 비유를 들어 쉽게 전달하는 능력은 더욱 놀랍다.
AI업계에 종사하는 이는 물론, AI세계에 관심이 생긴 입문자에게도 매우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AI라는 거대한 숲에서 길을 잃어 가까운 데 머물고 있는 해결책을 놓치고 있진 않은지? 혹은 AI의 속도에 짓눌려 스스로 가야할 방향을 잃고 있진 않은지? 본인이 몸담은 AI 특정 카테고리에 묶여있어 유관 카테고리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진 않는지? 이런 질문에 해당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많은 해결책을 제시할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