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아니 정확히는 세계사를 첨으로 배운 중학교 2학년때부터 꿈에도 그려보던 파리와 루브르,로마와 바티칸...
그런 곳들을 나이 30이 훌쩍 넘은 두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첨 가보게 되었다. 파리여행에서 루브르 투어때 윤운중 선생과의 첫 만남은 나와 우리 가족을 온통 서양미술의 세계에 푹 빠지게 해주었다. 기존의 여행 가이드와는 달리 전혀 친절하다거나 하다못해 쇼핑이나 식당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던 이 남자는 미술관에 들어서자 마자 서양역사와 신화, 성경, 미술기법 등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오죽하면 당시 초등 저학년이던 우리집 남매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아저씨’로 기억되었고 칠순이 넘으신 시부모님도 친구분들끼리 다니던 여행에서는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적인 여행에 너무도 뿌듯해하셨다. 우리 부부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은 모두 다 물어보았고 거침없고 막힘없는 그의 답변에 지적 호기심을 마구 채우느라 그 힘들다는 루부르 투어가 힘든줄을 몰랐다.
그 후에도 우연한 기회에 암스테르담, 마드리드에서 그와 조우해 미술관 투어를 함께 하면서 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이기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아르츠콘서트를 열고 콘서트마스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미술강연 시장에 새바람을 불어 넣을 때도 별로 놀라지 않았고 이번에 <윤운중의 유럽미술관 순례>라는 첫 저서를 보고도 놀라기는 커녕 때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마저 했다.
그의 신간을 누구보다 빨리 손에 넣고 목차와 머리말부터 읽어나갔다. 솔직담백한 문장, 정제된 작품해설, 군더더기 없는 감상평을 엿보면서 ‘역시 윤운중답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부 유명 미술평론가들은 자기들만이 아는 용어나 언어로 지식을 뽐내 나같은 독자들을 지레 주눅들게 했지만 윤운중 선생의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개인 도슨트를 동반하고 미술관을 한가로이 투어한다는 느낌이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지만 결코 지식주입만을 강요하지 않기에 더욱 편안하다.
미술관을 천 번넘게 다닌 그의 동선대로 움직이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책을 손에 넣자마자 단숨에 루브르편과 프라도편을 다 읽어버렸다. 물론 작품의 디테일한 내용까지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그렇게 한번 따라가보고 싶었다. 이 책은 두고두고 책장에 꽂아두면서 이용할 책이지 한번 읽고 덮어버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브르, 오르세, 내셔널갤러리, 바티칸, 우피치, 반고흐, 프라도 ...이름만 들어도 설레이는 미술관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투어할 수 있는 책들이 그동안 내 기억엔 없었던 것 같다. 외국 미술관에서 그저 욕심만 앞서 잔뜩 사온 두꺼운 도록들은 비록 책장에서 먼지를 둘러쓰고 있지만 윤운중 선생의 <유럽미술관 순례>는 아마 책장이 닳도록 읽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오백페이지 가량 되는 분량으로 두 권이나 되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술술 읽히는 문장덕분에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중간중간 자신이 손님과 투어했을 때의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묻어나오고 작품의 큰 의미와 배경, 혹은 아주 사소한 가십거리도 더해져 단순히 그림안내서가 아닌 인문적인 소양을 쌓기에도 적격인 책이다.
이 책 정도 읽어줬으면 어디가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 행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되고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들보다 먼저 읽고 잘난 척 할 수 있어 좋다. 대학생 자녀가 있다면 무분별한 배낭여행을 보내기 전에 이 책을 권해주라 하고 싶다.
아마도 이 책을 제대로 읽은 독자라면 분명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블록버스터 급 전시에 최소한 자원봉사 도슨트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겉으로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팔자 좋은 유람기처럼 유럽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을 돌아다닌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책 속 문장에는 그의 바지런한 발품과 피나는 학습의 결과물, 그림에 대한 애정이 모두 녹아있다는 걸 센스있는 독자라면 눈치챌 수 있다. 윤선생이 속칭 공돌이 출신이란 걸 알면 ‘나는 그림과는 무관한 터프한 남자, 그림은 부잣집 사모님들의 전유물’ 뭐 이런 생각은 한 방에 날릴 수 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복습의 기회, 갈 사람에게는 예습의 기회로 <윤운중의 유럽미술관 순례> 만한 책은 앞으로도 당분간 없을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