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전 여고시절, 노천명 시인의 <이름없는 여인되어> 라는 시를 읽으며 반발심이 생겼던 나는 결코 이름없는 여인이 되지 않고 만천하에 이름을 드날리는 여성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원조 페미니스트로서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엄청 열심히 공부했고 원하던 직업도 가지게된다. 그러나 그 시대만 해도 여자에게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였고 k장녀로서 열심히 살던 나를 단지 결혼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친정엄마는 부끄러워하셨다.
결혼이란 제도속으로 편입되면서 나에게 주어진 아내,엄마,며느리의 자리는 나를 더이상 내 이름으로 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때는 그것이 최선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30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그토록 거부했던 노천명 시인의 <이름없는 여인>이 바로 나인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런 자각을 하지 못했더라면 행복했겠지만 나란 인간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세속적인 의미로 이름을 날리는 여인으로 살지 못한 나의 못남에 대해 괴로운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만난 <무명이라고 아마추어는 아닙니다>라는 책제목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내용도 모르면서 그저 제목만으로....배우로서의 열정이 가득한 40대 작가의 책이었는데 서문부터 울컥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는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원고를 썼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삶에 무명,이름없는 풀 한 포기란 없다. 타인이 만든 기준에 따라 무명, 유명 나뉘어 살아가지만 모두 값지다" 라는 문장만으로도 나는 위로를 받았다. 비록 무명일지언정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분들은 위대하고 찬란하다 라는 작가의 말은 마치 큰 어른이 어린 나를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이런 이치를 불과 40대에 깨달은 작가는 어떤 삶의 궤적을 걸어왔나 한번 따라가보자 하는 맘으로 본문을 읽어 내려갔다. 솔직 담백한 문체와 함께 그가 배우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열정적으로 노력해온 과정들에서 꾸밈없는 진심이 전달되었다. 특히 파리 유학시절 에피소드들은 현재 파리에서 공부하는 나의 딸을 떠올리며 감정이입이 되었다. 이헌주 작가의 높은 인문적 소양이 돋보이는 대목들이 많았는데 '카프카의 도끼로 얼어붙은 감성을 깨우고,니체의 망치로는 이성에 질문을 던졌다'는 문장은 최근 내가 본 문장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다.
배우에 이어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안착해가는 대목에서는 30년전의 나와 달리 무척이나 현명해서 공감을 하기도 흐뭇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역시 젊은 세대에게 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녀의 현명함과 통찰력은 역시 엄청난 독서 내공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저 이름을 세상에 날리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시로 내 삶을 부정하며 내가 가진 다른 장점들을 외면해 온 내가 많이 부끄러웠다. 나보다 나의 딸과 더 세대차이가 나지 않는 이헌주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여성동지로서, 결혼과 육아의 선배로서 그녀가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배우로서도 언젠가 그녀에게 '별의 순간'이 찾아올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녀처럼 '나의 배움을 확장하고 사유하는 훈련, 나의 시선을 열어주는 훈련을 하면서 글쓰기라는 또다른 세계' 를 탐구해보리라. 이젠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주는 자식들에게 나도 멋진 등을 보일 성장을 해보겠다 다짐한다. 무명이라고 해서 대충 대충 아마추어처럼 살지 않겠다는 그녀의 외침을 금과옥조로 아로새겨 보자.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도 뭐 의미가 있겠으나 자신을 사랑하며 내인생의 무대에서는 내가 주인공임을 잊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하며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