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 으로서 우주에 관한 책을 덥썩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생물학적 여성으로서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적 여성으로서의 편견과 싸워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여성들이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 이미 50대 중반의 여성이 되어 버려 나 자신은 어떠한 새로운 도전을 할 엄두를 못 내지만 여성 선배로서 혹은 딸의 엄마로서 언제나 용기있고 당당한 여성들의 도전을 매력적으로 느끼며 응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평소 나의 생각에 부응하는 따끈따끈한 에세이가 나왔다. "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의 저자 켈리 제라디는 영화를 전공하고 민간 우주비행 산업의 미디어 전문가로 활동하다 직접 우주비행사의 길을 걷게 된 여성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1986년 TV를 통해 미국의 우주선 챌린저호가 발사 1분 정도만에 공중 폭발하던 장면을 충격적으로 보았기에 우주 여행은 한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당시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가 탑승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전에 유리 가가린이라는 러시아 우주여행사나 최초로 달착륙을 했던 닐암스트롱 때까지만 해도 우주는 신비롭고 멋지며 인류의 새로운 미래가 될 것 같은 희망의 아이콘 이었으나 챌린저호 폭발의 충격으로 한동안 우주에 관한 관심은 끄고 살았다.
30년이 훌쩍 흐른 지금 우리나라도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해 누리호를 발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슬그머니 우주에 관한 관심은 생겼으나 과.알.못의 수준에 맞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여성 우주비행사의 입지전적 에세이라는 데 방점을 두고 선택한 책이었는데 읽을수록 우주와 우주비행에 대한 지식을 상당한 수준까지 접할 수 있었다. 내가 뭐 직접 우주개발을 할 것도 아닌데 깊이 알 필요도 없거니와 이 책을 통해 신문에 나온 과학 용어, 우주에 관한 기초지식만 습득하면 성공이지 않은가! ㅎㅎ
켈리 제란디가 우주비행 산업과 마치 운명처럼 인연을 맺게 되는 과정, 남성 위주로 되어 있는 우주비행 용어나 매뉴얼을 바꾸는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 노력도 인상적이었다. 우주비행시 인간의 기본적 생리 현상이나 의식주 해결이 사실상 궁금했는데 실제 경험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자극적으로 다룬 내용과는 많이 다른 것을 알게 된 점도 신선했다.
인류를 위해 우주의 문턱을 낮추는 일을 하던 중 여자아이들로만 구성된 아프가니스탄 로봇팀 챔피언을 만난 일을 잊지 못한다는 저자의 경험담은 향후 우주의 미래는 물론 여성 우주과학자들의미래가 밝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또한 우주 산업에는 비행사 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직업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는지도 알게 됨으로써 마치 21세기적 르네상스 혁명과도 비교될 정도였다. 저자는 우주비행을 직접 경험한 흔하지 않은 인류로서 우주비행의 경이로움을 전파하는 소통 전문가로서의 사명을 띠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이 저자가 영화를 전공한 제법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고 있기에 가능하지 않나 생각해보았다.
이시대에 가장 필요한 융합형 인재 그 자체였는데 본인의 성과를 대단히 내세우고 있는 책이 아니라 차분하게 본인의 경험을 공유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자기의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있어 편안했다. 이런 입지전적 에세이의 경우 자칫 거부감을 느끼기 쉬운데 그런 면이 없어 청소년들에게도 아주 훌륭한 진로 지도서가 될 우려(?)도 있는 책이다.
나처럼 과학적 상식이 없는 사람이 읽어도 쉽게 이해되지만 관련 분야에 관심이 많고 우주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반드시! 기필코! 읽어보기를 권한다. 간만에 복잡했던 머리가 뻥 뚫리며 뭔가 힐링되는 책이었다.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아웅다웅 지지고 볶는 나의 일상쯤은 가소롭기 그지 없기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