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대학교 교육학과의 호리오 데루히사 Horio Teruhisa 교수에 따르면, 자민당 단독 집권과 일치하는 고도 경제 성장기가 경제적 합리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경제적 합리주의는 노동 현장을 변화시킨 것은 물론 가정까지도 냉랭한 인간 관계의 자리로 탈바꿈시켰다. '최대의 효율, 최소의 인력'이 슬로건으로 떠오른 사회에서 각자가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풍미를 보여주는 것은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는 젊은이들의 감수성과 지성은 변할 수 밖에 없다. [......] 젊은이들은 마치 모든 게 허용된 듯 행동하지만, 사실 그들은 정말로 운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는 목표도 이상도 없으며, 개인적 표현이 가져다 주는 만족감 또한 없다."
오타쿠에 대해서 이해를 한다는 차원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대한 충족도 만족스럽기는 하지만 다른 생각이 더 많이 들게 된 것 같다. 사실 일본의 사회 문제로 부각된 오타키즘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한국의 오타키즘은 아직 일본처럼 극심화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영향으로 그 발현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 상당히 다른 면들이 많다고 보인다.
그리고 또, 본문의 인용문에서처럼, 방향성을 상실한 젊은 세대에게 적합한 게임의 스타일이 어쩌면 현대 일본의 단일한 스토리로 진행되는 게임들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목표도 이상도 없는 플레이어에게 명확한 목표를 부여하고, 살다 보면 (플레이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엔딩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제시하는 그런 형태. 그리고 또 어쩌면 그런 스타일의 게임에 매료되는 플레이어의 성향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오타키즘의 문제가 단순히 오타쿠의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한다거나 게임, 미디어의 악영향이라는 단편적인 해석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는 부분이 왠지 매우 수긍된다.
이지메 현상은 어른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관계가 어린이들의 사회에 반영된 것일 뿐이다.
라는 부분에서는 최근에 읽었던 프로그래머와 (미식) 축구 선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학교에서는 따돌림 당하고 비웃음을 사던 공부벌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축구 선수의 자리를 대체하고, 축구 선수가 가하던 폭력을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역 폭력 행사한다는 이야기. 이와 유사한 부분인 것 같아서 다소 섬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