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고 더 착하거나 도덕적인 존재일까? 아니다. 혹시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건 여성이 사회적, 육체적 약자로서 권력에 더 잘 순응했기 때문이다. 여자도 얼마든지 부도덕해질 수 있다. 남자만큼 혹은 남자보다 잔인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은 평화주의가 아니며 도덕성 투쟁이 아니다. 남자들에게 빼앗긴 여자 몫의 파이를 되찾는 투쟁이다. 한마디로 밥그릇 싸움이다. 먼저 이것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내 기분 좋자고, 힐링하려고, 더 멋진 나로 꾸미려고, 더 나은 남자를 찾으려고 하는 게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사실. 자기계발이 아닌 정치의 영역이라는 사실. 페미니즘이 남성 중심 사회와 가부장제를 향한 생존 투쟁이자 해방 운동이라는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여자들은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답답한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듯 과도한 도덕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투쟁의 길이 꽃으로만 덮여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파이 싸움’을 이해하고 나면 여자들끼리의 대립과 갈등 국면도 새로워지지 않을까? 기왕 다투는 거 ‘누가 누가 더 도덕적으로 옳은지’를 가리는 대신 ‘이것이 여성의 파이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가리는 방향으로 옮겨가면 좋겠다. ‘기분 나쁘게 말하는 태도’보다 ‘파이를 던져버리는 행동’을 지적, 개선하는 쪽으로 말이다.
이렇게 되면 여자들 사이의 상호 신뢰 관계도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내 옆의 여성이 도덕성 검열관이 아닌, 파이를 위해 함께 싸우는 동지가 된다고 상상해보라.(여자들에게 주어진 파이가 워낙 작아 서로의 것을 빼앗는 건 최악의 행위다.) 내가 밀릴 때 편들어주는 것도 동지지만 헛발질할 때 나서서 말려주는 것도 동지다. 누군가가 헛소리를 한다면 나 역시 쓴소리를 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서로의 존재가 두려움은 아니다. 기분보다 중요한 게 파이란 걸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