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몹시 무거운 연말을 통과하고 새해 아침을 맞아 가족들과 첫 가정예배를 드리며 중대 결심을 선포했다.
아빠는 새해 첫 주 집에서 미디어 금식을 할 테니, 두 아들도 스마트폰, TV, 닌텐도에서 독서와 보드게임, 산책을 같이하자고.
순간 13살 장남의 낯빛이 흑빛으로 변했고 9살 둘째는 살짝 찡그리는 듯하다가 바로 순종했다.
아이들과 약속을 했으니 노트북 모니터를 켜지 않고(작은 모니터가 우리집의 유일한 TV이다), 책을 손에 드니 순식간에 절반을 읽었다. 긴 호흡의 독서에 집중하는 데는 TV와 핸드폰을 잠시 끊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술술 잘 읽히기도 한, 새해 첫 독서 목록은 신은경 작가님(이제 전 KBS 아나운서보다 세 권의 에세이를 쓰신 작가님 호칭이 더 어울린다)의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마음의숲)이다.
마음이 힘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은 젊은 독자들을 위로하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은 인생의 후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필체로 알려준다.
청년 이상으로 자신감이 떨어져 있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는 50대 이후, 막막한 노년의 50여 년은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노동환경은 50세에 은퇴하고 60~70에 세상을 뜨는 구조인데 수명은 100세 이상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도대체 은퇴 후 50년을 어떻게 보내야 한단 말인가! 60세를 노인이라고 부르기도 어정쩡하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가 되어간다.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는 이게 정답이니 이렇게 노력하라는 식의 자기계발 에세이가 아니다. 나이 먹는 것의 아름다움, 가능성, 즐거움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예쁜 가랑비처럼 마음을 적셔준다. 저자의 독서량과 다양한 경험, 그리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만난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유익하게 녹아 있다.
새해 50이 되는 내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죽더라도 떡볶이를 먹고 싶다' 같은 청춘들에게 힘든 게 당연하고 정답은 없고 자신이 찾아가는 식이라는 위로 책들보다 훨씬 어울리고 정직한 책으로 넘 괴로워하지 말라는 포근함을 안겨주었다.
올해도 마흔아홉 때처럼 힘들 것이다. 50이라고 철들지 않는다. 내 나이가 나를 철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용납하는 품을 넓혀 준다. 팔 길이는 길어지지 않아도 마음의 길이는 한 뼘 이상 길어지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Embracing)>이다.
새해 첫날, 좋은 에세이 한 권을 읽고 아내와 아이들 데리고 가까운 수리산 삼림욕장에서 찬 바람 불어도 즐겁게 등산을 하고 내려왔다. 영승이 운동화가 떨어져서 세일하는 운동화 한 켤레 사주고 집에 와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늘 동일한 소소한 일상이지만 '스스로를 안아주는 마음'이 조금 생기니 넉넉한 일상으로 바뀐다.
밤에 아이들과 보드게임 두 판을 했다. 독서와 보드게임으로 아이들과 집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이것저것 힘든 현실을 경험해 보니 행복은 일상의 소소한 부분을 즐겁게 누리는 데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신은경 작가님의 책에 그러한 내용이 소제목 곳곳에 들어 있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떠나야지.
‘미리 일일이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맑아져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