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만든 세계
유재일 / 김영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돈, 물건, 환율, 금리, 수입, 수출 같은 것들이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세계사의 결과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평소에는 경제 뉴스에서 미국의 달러 패권이나 중국의 부상, 공급망 문제 같은 이야기를 접해도 각각 별개의 사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가 돈을 가지고 무역로를 장악했는가. 누가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만들었는가. 누가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가.
결국 세계의 주도권을 차지한 국가들은 이 네가지를 서로 연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은을 가진 나라가 세계를 움직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역사를 어렵게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패권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본주의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달러가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사실이다. 그런데 근대의 세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달러가 아니라 은이 국제무역의 중요한 결제 수단으로 기능하던 시대가 있었다. 스페인의 해외 진출, 중국과의 무역, 일본의 은 생산, 임진왜란에 필요한 전쟁 자금까지도 결국 당시의 세계적인 은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었다.
향신료 무역에 집착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면직물 무역을 열고 인도 무역에 집중한 영국 동인도 회사의 사세가 역전된 것이다.
돈을 모으는 방법을 바꾼 네덜란드
스페인 다음에 등장하는 네덜란드는 자본을 움직이는 방식을 바꾸었다. 암스테르담의 상인들은 원양 항해에 투자했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회사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증권거래소가 등장했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주식 투자, 배당, 공매도, 옵션거래 같은 금융의 모습이 이미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돈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본을 모으고, 그 자본을 다시 무역과 군사력에 투자하는 시스템을 가진 국가가 강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해회사는 주식으로 국왕과 정치인들을 매수하며 버블을 키웠고 결국 버블은 터지고 말았다.
빚을 성장의 힘으로 바꾼 영국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철도가 깔리고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생산력이 커지고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과거에 만들어진 부채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작아졌다. 영국의 산업혁명에는 자본이 있었고, 금융 시스템이 있었고, 그 자본이 기술에 투자됐다. 기술이 생산력을 높였고, 그 생산력이 무역을 확대했다. 이런 선순환이 결국 영국을 세계적인 패권국으로 끌어올렸다. 미국 역시 이것을 그대로 따랐다. 패권은 영원하지 않다는 역사적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세계질서 역시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
국가의 존망을 뒤흔드는 전략 자원이 된 것은 철강이 아니라 석유다.
은에서 시작해 신용으로 넘어가고, 금융과 산업혁명을 거쳐 오늘날의 기술 패권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읽다 보면 자본주의의 역사가 하나의 긴 이야기처럼 연결된다. 과거의 패권전쟁을 읽는 것이 결국 미래의 세계질서를 준비하는 공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