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상의 시와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어렵고 난해해서 읽기를 포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이 흘러 지금 다시 만난 이상의 작품은 아예 다른 책을 읽는 것처럼 새롭게 다가왔다. 이상의 소설인 '날개'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33세의 짧은 생을 살다간 이상의 내면세계가 깊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와 방항이 고스란이 전해져왔다.
이번에 만난 이상 전집 1권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이상이 직접 그림 그림과 이상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들이었다. 문학 작품만으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그의 예술적 감각과 재능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젊은 이상을 만나는 듯한 경험이었다.
그의 소설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문장을 길게 이어붙이는 파격적인 문체는 여전히 새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지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장들이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 같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은 이상의 소설은 근대성과 식민지성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온몸으로 받아낸 한 예술가의 처절한 육성처럼 들렸다. 고등학생 때 수능을 위한 공부를 하던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작품의 깊이가 이제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상 전집 1권에는 '12월 12일', '봉별기' 등 이상의 많은 소설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각각의 작품이 가진 독특한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각 소설마다 주석이 달려있어서 처음에 난해하게 느껴졌던 부분들도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90년 전에 쓰인 이상의 작품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강렬한 울림을 준다는 점이 놀라웠다. 정체성의 혼란, 소외감, 실존에 대한 고민 등등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가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만의 '날개'를 펼치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상이 지금을 살았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천재성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