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돌이는 유효하다.
타루 2004/01/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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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구석, 한 사람이 찾아왔을 때 그의 현재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작업이 끝난 후엔 그이의 과거를 훑어보게 되기 마련. 일기장, 녹취록, 주위의 전언 등 다양한 경로가 있을 터이나 한 선각자가 얘기했듯이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사진을 통하는데. '예전이 훨씬 낫네' 또는 '용 됐다 너! 어디 성형외과야'라는 이분법적 반응이 나오기 일쑤다.
한 예술가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 그의 초기작은 새로이 출간되거나 재발매 또는 복원되곤 한다. 이미 세상에 이름을 알렸으나, 무명시절인터라 묻힌 작품들에 대해서도 대중은 기꺼이 추적하여 본인의 시야에 넣곤 한다. 문학이 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관계로 또한 소설이 문학의 하위분류인 이유로 마음에 든 소설가의 초기작을 더듬어보는 것은 소설독자의 자연스런 이치리라. 여타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이 시중에 널려있음에도 이 대신, 한 작가에 대해 고집스레 파고드는 이유는 보물찾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함이다. 허나 어렵사리 구한 작품을 대하는 순간 이 즐거움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지 못할 시, 이유없는 배신감이 치밀어오르게 된다.
박민규씨는 여전히 신인작가이기에 위의 서론이 다음 서술할 내용에부담스럽게 작용하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하 삼미)> 독서 후 그의 빠돌이가 되기로 작정한 내게 <지구영웅전설>은 여지없이 배신의 칼을 빼들었다. 물론, 제8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독자를 향해 툭툭 날리는 코믹 '쨉'은 여전히 유효한데다, 불량국가 미국 그리고 오만한 제국의 시스템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슈퍼맨, 배트맨 등 만화 주인공과 일대일 대응시켜 환타지 세계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허나 책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러한 기발함이 주는 신선함이 사라지면서부터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미국의 횡포에 대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으로 변질되어 힘을 잃게 된다.
<삼미>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구영웅전설>의 아킬레스건은 가벼움이다. 허나 <삼미>의 가벼움이 '책이 너무 재밌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지구영웅전설>은 '작가의 깊이가 없어 보인다'는 혐의가 설득력을 얻게 한다. but, 같은 책에 실린 작가 인터뷰에서 짚은 그의 마인드 그리고 그는 신인이란 점. 이로 인해 박민규 빠돌이는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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