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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jung님의 서재
  •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 미시마 유키오
  • 15,120원 (10%840)
  • 2024-12-02
  • : 1,860



손 편지 쓰길 좋아해서 편지 교실이라는 제목에 혹했다. 편지 쓰는 법을 알려줄까? 소설인데? 아니면,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를 읽다 보면 절로 배우게 되니 편지교실이라고 했을까?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은 책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은 연애소설이었다. 40대 남녀와 20대 남녀, 그리고 20대 남성 한 명, 이렇게 다섯 명이 서로서로 편지를 교환한다. 40대는 40대끼라, 20대는 20대끼리만 주고받을 줄 알았는데 40대와 20대가 얽히고설키다가 점점 막장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인데...(계속 쓰면 스포 가능성!)


연애소설이라 했으니 연애편지만 있을 것 같지만 일상적인 내용으로 확대된다. 결혼과 임신, 상담, 급전 요청, 연하장, 병문안 등등 다양한 편지들 속에서 등장인물 다섯 간의 관계가 희한하게 연결되었다 떨어졌다 아주 난리 부르스다.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문제는 지금 독자들이 공감할 보편적인 것들이 많지만 1960년대 일본이라는 배경을 감안하고 읽어야할 부분도 있다. 촌철살인의 포인트가 분명 있고, 쓴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어 고개 절레절레할 내용도 있다. 그 와중에 편지 쓰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괜히 탐미주의자가 아닌 거다.


막 출산한 후 제 아들을 자랑하려고, 보러 오라고 쓴 편지에 뚝뚝 묻어나는 사랑을 보라.


p.75


선생님, 환류식 분수라는 게 있지요. 뿜어져 나온 물이 떨어져서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뿜어져 나오는, 딱 그거예요. 이제껏 나 혼자만의 생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명이 내게서 젖을 통해 아이의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런 다음 아이의 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흐름이 되어 제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 빛의 흐름이 다시 제 안에서 젖이 되어 아이의 몸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생명이 순환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정말 잘 잡니다. 그렇게 잘 수 있는 건 분명 이 세계가 안정된 곳이라는 걸 알고 안심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그’ 덕분에 제게도 이 세계가 안정된 행복이 넘쳐흐르는 듯 느껴집니다.


영문편지 쓰는 요령을 알려주는 6가지 방법 중 세 번째는 이러하다.


p.134


(3) 일상의 소소한 유머를 섞어 넣으십시오.

예를 들어 ‘액세서리를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하고 나갔더니 우리 강아지마저 부러운 듯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강아지는 동네 개들 중에서도 가장 멋쟁이라 안목을 신용할 수 있습니다.’ 같은 느낌으로.


여자친구에게서 임신했다는 편지를 받은 20대 남성이 쓴 답장은, 대면해서 하는 말보다 편지가 진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p.181


당신의 편지는 임신 사실을 냉정하게 말하고, 거기서 생길지 모르는 내 마음의 부담을 없애려고 열심히 애쓰는 편지였어. 그래서 일견 편지가 냉정하고 지나치게 이지적으로 보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진정한, 조용한 애정이 넘치는 편이야. 이건 그야말로 조용한 겨울의 햇빛처럼 몸과 마음을 점점 데워가는 애정이고, 어릴 적 일광욕을 하던 추억과 이어지는 듯한 깊은 그리움이 넘치는 애정이야.

당신이 이걸 편지로 써줬다는 게 고마워. 만약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면 서로의 미묘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가 서로의 마음에 있지도 않은 억측이나 어림짐작을 낳았을 거야. 지금 이렇게 만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면서도 편지로 답장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사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 문장.

“사랑은 즐거운 게 아니고 병입니다. 불쾌하고, 때로는 어두운 발작이 생기는 음침한 만성질환입니다. 사랑이 삶의 보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나쁜 계략이 훨씬 더 큰 보람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랑이 즐겁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분명 아주 둔감한 사람이겠지요.”


‘작가가 독자에게 쓴 편지’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결코 남에게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없고, 만약 가질 수 있다면 자신과 이해 관계가 얽혔을 때뿐입니다. 세상을 안다는 것은 이러한 쓰디쓴 삶의 철학을 절실히 깨닫는 일입니다.”


편지를 쓸 때는 상대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전제로 쓰라는 조언이지만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마지막, 여성 독자가 보낸 편지를 사례로 언급한 내용은 이 책의 제목에 부합한다.


“아무리 정열이 넘친다 해도 상대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멋대로 정열을 발산한다 한들 상대는 귀찮게 여기고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고 사람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일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당신이 쓰는 편지에는 생생한 힘이 갖추어지고 타인의 마음을 뒤흔드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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