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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제목이 <이상한 사파리>입니다. 사파리가 이상하다니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지요? 아이들은 대부분 사파리에 가고 싶어 합니다. 자연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사파리를 왜 이상하다고 했을까요? 책을 펼쳐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소개할 동물 사랑꾼의 이름은 김사냥입니다. 한 번 더 이상합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사냥이라니요...
제목부터 사파리 안내자의 이름까지, 시작부터 이상합니다. 이 그림책을 만든 이연진 작가님의 소개를 보니 살짝쿵 귀띔을 주는 것 같기도 하군요. 작가는 ‘이상한 일이 이상한 일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예민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사람들이 점점 무감해지는 것인지, 이상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뻔뻔한 자들 때문에 세상이 이상해진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상한 점을 포착하는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눈 앞의 블라인드를 걷을 수 있게 됩니다.
'자연 사랑 입장권 VIP'를 받은 당신, 이제 이상한 사파리로 들어갑니다. 동물 사랑꾼 김사냥이 소개하는 첫 번째 동물, 토끼를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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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그림에 글자도 검정색, 다만 토끼의 꼬리와 목도리만 핑크네요. 푸르른 초원을 뛰어다니는 토끼는 청정한 풀만 먹고 자라 스트레스가 전혀 없답니다. 털에 윤기도 가득하구요.
다음으로 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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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네 온 가족이 모여 잠들어 있네요. 멸종 위기 동물이라 더욱 귀하다는 여우 역시 풍성한 털을 부각해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어요.
거위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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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리가 넘는 거위들이 한데 모여 낮잠을 잡니다. 거대한 거위 무리는 오직 이곳 사파리에서만 만날 수 있대요. 그런데 배게와 커다란 이불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네요. 깃털은 날리는데 거위는 대체 어디 있나요? 아, 자세히 보니 이불 아래에서 거위들이 잠을 자고 있어요.
그림책의 그림들을 리뷰에 모두 공개할 수 없어 사진은 여기까지입니다. 이후로 나오는 동물은 공작, 악어, 호랑이, 곰, 코끼리에요. 앞에 나온 동물 셋의 그림과 사진 사이의 모순을 눈치채셨나요? 그림은 인간이 동물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극대화시켰습니다. 코끼리까지 소개가 끝나면 김사냥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 저와 함께한 사파리가 만족스러우셨나요? 회원님들의 자연 사랑에 대한 열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동물 사랑꾼으로서 굉장히 기쁩니다."
자연 사랑에 대한 열정이라는 문구가 자연 사냥에 대한 열정으로 읽히는군요.
그리고 자연 사랑꾼의 마지막 멘트는 이러합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언제나 아낌없이 내어 주는 것 같습니다.
(……) 지금까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너무나 사랑하는 동물 사랑꾼, 김사냥이었습니다."
이 사파리에서 만난 동물들은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은 동물들의 것을 받아가는 게 아니라 다 빼앗습니다. 그들에게 묻지도 않았고,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은 지구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맞습니다.
이 책을 읽고 일순 멍해졌나요? 이상한데도 이상한 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가는 이쁜 그림으로 뒤통수 얼얼하게 합니다. 눈치 좀 채라구요! 알았으면 행동하자구요!! 마지막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라는 말은 제발 자연을 그대로 두라는 당부 같아 부끄럽습니다.
월동 준비를 위해 구스다운을 검색하던 당신, 해외여행 잇템이라며 악어가죽백을 쇼핑 목록에 넣은 당신, 보드라운 토끼털 고리를 아이에게 선물하려던 당신, <이상한 사파리>를 먼저 읽어보길 권합니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