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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우스운 이야기로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이 소설의 초반부에 나오는 버터간장밥에 대한 묘사가 정말 식욕을 돋우는데요. 게다가 살인범 가지이 마나코의 음식 찬양론에도 몹시 혹해버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여행지에서 느낀 약간의 흥분까지 더해져 정말 오랜만에 오밤중에 야식을 그것도 막창을 배달시키고는 앵커 버터까지 곁들여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단단히 체해버렸습니다. 그냥 체한 줄 알았는데 지사제랑 소화제를 아무리 먹어도 추석 연휴 내내 배가 아팠어요. 연휴가 끝난 아침에 바로 병원에 갔더니 위염에 장염까지 왔다고 하더라고요.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더니 이틀 정도 있다가 나아지긴 했습니다. 이 소설 때문에 일주일을 통으로 배앓이를 한 셈입니다.
살인범 가지이 마나코의 독점 취재를 따기 위해 그의 호감을 사고자 노력하는 주인공 리카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166cm에 49kg를 유지해온 리카는 가지이의 지령(?)에 따라 아쉬레 버터를 사와 버터간장밥을 먹고, 가지이의 블로그 글을 보고 버터명란파스타를 요리해먹습니다. 그리고 가지이가 애인과 갔던 파인 다이닝에 홀로 가서 3만엔의 식사를 황홀하게 즐긴 후에 바로 배탈이 나죠. 기름진 음식을 단련되지 않은 뱃속에 들이부었더니 탈이 나버린 것입니다. 가지이와 리카의 만남도 이처럼 진행됩니다. 가지이는 리카가 몰랐던 세계를 알려주고, 리카는 취재라는 목적을 위해서든 정말로 심적으로 동조해서든 허겁지겁 그의 세계를 따라가려다 몸과 마음에 탈이 나게 됩니다.
과체중 여성을 용납하지 않는 일본 사회에서 자신의 살찐 몸을 긍정하고, 자신이 먹은 맛있는 음식들로만 이루어진 자신의 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가지이의 모습에서 리카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맛있는 것을 먹기 시작하면서 리카도 살이 찌게 되지요. 근데 5kg만 쪄도 주변에서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느니 하면서 온갖 난리를 치는 모습은 정말 과하다 싶더라고요. 한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지금보다 20kg는 덜 나갈 때도, 네 몸은 정상이 아니라느니, 무능하고 게을러 보인다느니 하는 말을 아주 많이 들었죠. 그에 대한 반감으로 더 먹고 더 찌게 되어버리긴 했습니다만….
3명의 남자를 사고사로 가장해 살인한 희대의 여성 살인마의 살인사건의 진상을 찾아가는 추리소설이기도, 요리와 음식에 대한 묘사가 무척 생생한 미각적인 소설이기도, 여성 간의 우정에 대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촘촘하게 짜여진 구조적인 불합리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동료를 만들어나가는 한 사람의 성장소설입니다. 고급스러운 프랑스 음식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다양한 재료를 넣었지만 처음 먹어보는 조화로운 맛을 내는 그런 소설이에요. 정말 오랜만에 너무 만족스럽게 읽은 일본 추리소설이었습니다. 유즈키 아사코의 전작도 모조리 탐독하리라 결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