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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bi0728님의 서재
  • 가장 밝은 검정으로
  • 류한경
  • 19,800원 (10%1,100)
  • 2023-06-10
  • : 151

한때 타투를 새기고 싶어 매일 타투이스트와 디자인을 검색하고 자료를 모았다. 그게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 나에겐 여전히 타투가 없다. 그저 내 몸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려 새기는 일일 뿐인데. 주변인을 비롯한 사회의 시선을 걱정하고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 이상했다. 부모에게 혼이 나 등짝을 맞을 것이며 언젠가 새긴 것을 후회하며 지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엄포와 염려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고 이것은 내 몸인데? 타투를 새긴 지인이 몇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게 타투는 이상한 것이나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약간의 호기심과 약간의 동경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앞표지의 사진, 뒤표지와 책등의 색감을 보자마자 예쁘다고 생각했다. 펼쳐서 내지를 훑어보니 사진과 인터뷰 문구가 여백을 적절히 활용하여 배치되어 있어 좋았다. 인터뷰도 사진도 눈에 잘 들어오도록 구조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보였다. 타투 스티커가 동봉되어 있었는데, 유명 타투이스트 타용의 고양이 디자인이었다. 마침 여름이라 피부가 많이 드러나는 옷을 입으므로 한 장씩 사용해 보면 좋을 듯하였다.


  『가장 밝은 검정으로』는 타투한 창작자 10인의 인터뷰와 사진이 수록된 사진집이자 에세이다. 이들의 인터뷰와 타투 사진을 보면서 때로 속이 시원했고,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도 조금씩은 해소되었다. 인상 깊었던 타투는 김선오 시인, 유이든 배우, 황예지 사진가의 것이었다. 습작을 먹어주는 물고기 구터, 팔의 위치에 따라 솟구치거나 떨어지는 샐러리맨, 반짝임과 하트까지. 좋았던 인터뷰는 많았는데, 인용해 둔 홍승은 작가의 인터뷰가 내 현재 생각과 비슷하다. 홍승은 작가와 나의 차이점이라면 나는 아직 내 몸에 타자성을 입히지 못했다는 것 정도? (주체적으로 살려는 노력은 하고 있다)


  타투를 함으로써 신체를 감각하고, 나와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죽음충동을 해소하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인터뷰이들의 말에 많은 타투인이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내 몸에 영원히 남을 것을 새기며 영원함을 걱정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일, 영원함에 지는 일을 기꺼이 하는 심정이란 무엇일까. 거기까지 이르는 데에 느꼈을 감정들이란 어떤 것일까. 타투를 삶의 요소, 생계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꽤 많은데 여전히 우리나라는 타투가 유일하게 불법이다. 타투 법제화에 많은 이들이 힘쓰고 있지만 아직 길이 멀어 보인다. 타투에 관련된 국내 서적 또한 20권이 채 되지 않으며(문학 분야 제외), 컬러링 북까지 제외하면 이보다 더 적어진다. 타투 법제화가 되어 좀 더 다양하게 표현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사회를 잠시나마 상상해 본다.



* 해당 서평은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6기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타투도 음악처럼 ‘안 해도 되는데 굳이 하는 것‘이다. 창작은 결국 쓸데 없는 것에서 시작된다.- P42
팔을 접고 타투를 내려다보면 샐러리맨이 위로 솟구친다. 떨어지는 사람을 금방 올려 보낼 수 있어서 이 타투가 무척 마음에 든다. 나의 상태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으로 얘를 움직이면서 놀다 보면 기분이 나아진다.- P60
타투는 스스로 타자성을 몸에 입히는 행위라고 들었다. 사회에서 소외되는 경험으로서 ‘자발적 얼룩‘을 새기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새길 수는 없으니까 타투에는 엄청난 능동성이 필요하다. 타투를 새기는 건 결국 능동적으로 타자가 되는 일이고, 고유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로도 다가온다.
내 몸이 쌓아온 서사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깨끗함‘의 기준을 한참 벗어나 있다. 이미 얼룩진 몸인데, 타투를 한들 뭐가 대수인가. 나는 자신의 삶과 몸을 주체적으로 재해석할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겐 타투가 그 수단이었다.- P96
타투를 일부러 지우지 않는 이상 얘네는 영원히 내 몸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영원함이 생각보다 큰일인 것 같다. 말하자면 내가 영원함이라는 속성에 진 거다.-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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