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가들의 언어, 작업방식, 생각이 궁금해서 종종 그들의 책을 읽는다. 이 책도 그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서평단에 신청했다. 그의 모든 음악을 들어보진 않았지만 <거위의 꿈>, <다행이다>, <하늘을 달리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정류장>, <달팽이> 등 유명한 노래의 가사를 떠올려 보았다. 쉽게 공감되는 상황이나 감정을 간결하게 묘사해 내면서도 깊이가 느껴졌다.
뒤표지에는 이적이 소재 삼았을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지 궁금해하며 펼쳐보니, 일반 산문집은 아니었다. 한 문단 정도의 단상 모음집이었다.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나 그건 잠깐이었다. 읽어 보니 글 한 편 한 편 생각해볼 거리가 있었다. 재미있는 상상, 인생에 대한 고찰, 소름 끼치는 이야기,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의견 등을 읽으며 즐거웠다. 음악에 대한 글은 4부, <노래의 깊이>에서 읽을 수 있다. 자신이 작사한 가사에 얽힌 에피소드나 생각, 창작에 관련된 이야기, 춤, 악기······.
나는 <멀미>, <시간>, <좀비>, <원만>, <고수>, <경우> 가 좋았다. <절연>은 좀 소름이 돋았고, 가사와 관련해서는 <하늘>과 <거짓말>이 좋았다. <시간>을 읽으며 한 생각은, 그러니 야구가 인생과 비슷하다고들 이야기하나 보다, 였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시간이 제한된 스포츠가 아니라 9회까지 진행하여 승부를 가려야 하고, 동점 상황이라면 12회 연장전까지 진행해야 하니까. 야구도 인생도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야구 이야긴 없어서 조금 아쉬웠던 야구팬).
긴 글이 아님에도 이적의 생각을 충분히 접하고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가사에서 느껴지는 간결함과 담백함, 생각의 깊이가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었다. 자기 전 이부자리에서 가볍게 한두 꼭지씩 읽어도 좋을 듯하고.
이적의 생각이나 상상이 궁금한 사람, 이적이 작사한 가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한 팬과 작사가 지망생, 이적의 깊고 담백한 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 전하고자 하는 지혜란 고작해야 ‘짜파게티를 끓일 때 마지막 물양 잘 맞추기‘ 같은 것이 아닐까? 미리 얘기해봐야 직접 해보기 전엔 별 도움이 안 된다. 먼저 얘기해주지 않아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자기에게 딱 맞는 물의 양을 스스로 찾기 마련이다. 뭐, 전쟁을 막고 전 인류가 평화롭게 지내는 방법 정도 되면 좀 다른 수준의 지혜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어떤 세대도 몰랐던 것 같고.- P19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TV에서 멀미약 광고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갈 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멀미약을 먹였고, 간편히 귀 밑에 붙이는 제품은 등장과 함께 큰 히트를 치기도 했다. 그때의 아이들은 지금보다 멀미가 훨씬 잦았을까. 물론 버스나 승용차의 승차감이 더 거칠기도 했겠지만, 고도성장기 이른바 ‘마이카 시대‘로 진입할 무렵, 우리는 다가오는 세상의 속도감이 낯설어 몸과 마음으로 멀미를 겪어냈던 것 아닐지.- P37
농구 경기 중간엔 시계가 시시때때로 멈추지만, 축구 경기 도중엔 시계가 멈추지 않는다. 시간을 다루는 두 가지 방식이 흥미롭다. 인플레이가 아니면 유의미한 시간으로 세지 않겠다는 농구의 논리와, 시간은 좌우지간 흐르는 것이고 인플레이가 아닌 순간은 추가 시간으로 보상하겠다는 축구의 논리. 물론 실세계에서 시간은 멈추지 않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고 나중에 보충해주지도 않지만, 때론 생각한다. 우리 삶에도 농구 혹은 축구의 방식으로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택할지.- P47
줄리엣은 점액질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로미오의 입술에 가만히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당신의 입술은 아직 따스하군요."
묘지 밖에선 야경꾼들과 캐플렛 부부, 영주와 아버지 몬터규가 아무것도 모른 채 다가오고 있었다. 바야흐로 베로나의 두 원수가문을 지구 위에서 완전히 소멸시킬 좀비 커플의 대폭주가 시작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P73
‘마른하늘‘이란 말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표현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한자로는 청천벽력일 테니, ‘맑은‘에서 기역이 탈락하여 ‘마른‘이 된 예일 것이다. 그걸 알지만 굳이 마른하늘을 달리고 싶었다. 마치 날벼락처럼 번쩍이고 싶었다. 영화 <스타워즈>의 스카이워커보다 한발 더 빠른 스카이러너가 되고 싶었다. 이카루스가 밀랍날개 다 녹을 때까지 태양을 향해 날았던 것처럼, 설혹 두 다리 모두 녹아내린다고 해도 태양 가까이 날아 그대에게 가고 싶었다. 나의 희망이자 구원을 향해.- 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