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공포와 강박을 어느 정도 가지고 산다. 공포까지는 아니더라도 싫어하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은 우리가 한 번쯤은 느껴보거나 들어보았을 공포증과 강박증을 망라한 책이다. 증상과 관련된 흥미롭고 재미있는 기록을 풀어주고, 당시 전문가가 진단한 병명과 처방을 이야기 해준다. 생긴 지 오래된 증상의 경우에는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프로이트가 자주 등장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전혀 관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증상까지도 성적 욕망과 결부시키는 경우가 꽤 있어서 오랜만에 경악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공포증과 강박증이 사회적 상황과도 연관이 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즐겁게 읽은 부분으로는 곤충공포증, 비웃음 공포증, 휴대전화 부재 공포증, 발모벽, 불결공포증, 서적수집광, 저장강박증이었다. 나는 벌과 잠자리, 바퀴벌레를 무서워한다. 학창 시절 따돌림 받은 적이 있어 누군가의 비웃음에 민감하다.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다닌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발모벽이 잠깐 있었다. 물건 버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나에게 해당하는 내용들에 공감이 되어서 읽으며 재미있었다. 종종 유명인도 이러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될 때가 있었는데, 해외 유명 인사들만 나오다가 갑자기 소지섭이 튀어나와서 약간 뜬금없었다.
내지 중간중간 삽입된 약물들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체라서 좋았다. 공포증과 강박증을 이야기하는 책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다. 어린 시절에도 이런 책들을 호기심을 가지고 아주 재미있게 읽곤 했는데, 어른이 되어 읽으니 그 당시보다는 재미가 덜 느껴져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나마 로알드 달의 글과 비슷한 느낌이 나서 읽으며 좋았다.
내가 가진 공포증과 강박증이 궁금한 사람, 인간이 가진 집착들이 궁금한 사람, 로알드 달의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특정 대상을 피하려고 하는 강박이 공포증이라면, 광기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강박이다. - P13
오늘날 우리는 위험을 감지하면 구체적이고 반사적인 행동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을 분석, 설명, 날조, 과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기억할 뿐만 아니라 공상도 하고, 인식할 뿐만 아니라 머리도 굴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온갖 공포증에 시달리는 이유다. - P52
레인은 우리가 남다른 기질과 별난 행동, 일상의 감정을 타당한 이유없이 의학적 문제로 다룬다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P125
역사적 사건이 우리의 행동과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코로나19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줬다. 두려움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다시 말해 두려워한다는 것은 논리적이고 양심적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제는 강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 된 것이다.-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