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고르게 된 계기가 있다. 2021년 초, 겨울이었다. 야근하다 상사와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평소 막히는 길목이 아닌데 유독 막히는 게 이상했다. 택시가 천천히 주행했고, 오른쪽 도보와 가장 가까운 도로에 승용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근처에는 오토바이가 넘어져 있었고, 도로에 천으로 덮인 시신 한 구가 보였다. 상사는 배달 기사인 것 같은데 너무 끔찍하고 안타깝다고 말하면서도 시선을 돌리질 못했다. 나 또한 그랬다. 일이 너무 바쁘고 고되어 거의 매일 점심과 저녁을 배달시켜 먹었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도로를 바쁘게 휘젓고 다니는 배달노동자들을 볼 때면 제발 사고 나지 않길 바랐다. 사고 목격으로부터 약 2년이 지난 지금, 산재 신청 기업 1위가 배달기업인 이유가 궁금했다. 배달노동자들이 이토록 사고에 노출되어 있는 데도 과속하고 신호를 위반해가며 위험하게 운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설명하기 복잡한 배달업계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줄 책이 필요했다.
저자는 잠시 멈춰서서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정말로 운전에 능숙한지, 원동기 면허증은 취득했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배달노동자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확인하고 관리해야 한다. 임금과 안전(생명)은 무관하지 않다.' 라는 것이다. 배달노동자가 주로 이용하는 오토바이 관련 사고와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배달콜, AI, 산재에 대한 이야기를 경험과 통계, 기사와 논문 등을 인용, 실험을 통해 풀어낸다. 이것을 토대로 배달업계에 5가지 제안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플랫폼 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 배달노동자들이 왜 항상 바쁜지, 위험하게 운전하는지 궁금했던 사람, 배달료 측정 기준이 궁금했던 사람 등에게 이 책을 추천해본다.
배달노동자들이 오토바이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신호위반과 난폭운전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단계. 벌벌 떨면서 조심조심 운전하는 초보 시절부터 사고가 발생한다. 오토바이를 이용해서 일할 정도로 익숙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P25
플랫폼회사는 이 최고의 공장을 짓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도로를 깔고 정비하는 것은 국가가, 사고 예방을 위한 단속은 경찰이 한다. 배달 쓰레기는 공공의 세금과 시민들이 감당하고, 교통사고 처리는 배달노동자 스스로 해결한다. 배달업으로 발생하는 위험과 비용을 시민과 노동자가 책임진다는 사실은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이었다. 최근 합병과 상장에 성공한 배민과 쿠팡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투자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화면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배달기업은 얼마나 신속한 배달이 가능한지를 해외 투자자들에게 시연했고, 투자자들은 도시와 시민을 사유화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플랫폼에 열광했다.- P43
시민들이 안전하게 도로와 도시를 이용할 권리와 빠른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배달기업의 이익이 충돌한다. 빠르게 배달받고 싶은 소비자의 욕망과 시민의 안전이라는 이익이 충돌한다. 여기에 빠르게 음식을 판매하고 싶은 가게 사장님의 욕망, 빠른 배달을 통해 많은 수익을 올리고 싶은 라이더의 욕망까지 뒤엉킨다. 이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라이더와 시민의 입장에서는 최악인 라이더가 동일 인물인 모순을 발생시킨다.- P44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이내 부끄러워졌다. 나는 배달앱의 알림에 아무런 분노도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사람 하나 죽었다고 배달산업이 멈출 리 없다. 다른 사람이 배달하면 그만이다. 죽은 이는 데이터에서 삭제될 뿐이다. 배달노동자의 사고와 죽음을 막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면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구멍이 뻥뻥 뚫린 채 방치되고 있다.-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