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조짐은 어쩜 그리도 조용하면서 시끄러운 걸까요. 단 한번도 엉겁결에 이별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이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죠. 사랑이 터져라 피어나는 순간 뒤 닥칠 권태가 무서워 시작하지 못한 연애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 제게 결혼, 아니, 이혼은 정말 까마득하달까요. 생각만해도 아득해집니다.
<홀딩, 턴>은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는 회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이별의 순간보다는 이별을 향해가는 과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사랑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했죠. 티내며 다가설 용기는 없던 두 사람이 엉겁결에 마주하게 되는 우연의 순간은 ... 몇 번을 봐도 아련한 것 같습니다. <홀딩, 턴>에서는 음악이 그 매개를 해서인지, 뭐랄까요. 영화 <라 붐>의 순간을 보는 듯했습니다. 물론 <라 붐>이 언급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환상의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비일상이 일상이 되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가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아니, 맞춰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지요. 이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여느 오래된 연인의 고민과 비슷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부부라기보다는 동거하는 연인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끼니를 때우고 시간을 때우며 지원은 자신이 무엇을 메우고 있는지, 자신에게서 빠져나간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사랑인가, 자존심인가, 안정된 생활인가. 대체 무엇을 대체하고 있는 걸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연애를 끌고 간 적이 있는 저는 이 대목에서 작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인지 저는 누군가의 직접적인 위로보다는 '나도 그랬어...'의 스토리에서 더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와 일면 비슷한 부분이 있는 진에게서도 애틋함을 느꼈죠.
닉네임조차 자기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공무원이 갑갑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옷이 잘 어울리는 사람. 한마디로 진은 별로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읽어나가며 포스트잇을 이렇게 많이 붙인 적도 몇 번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유독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너와 걔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다는 얘기는 20대까지만 하는 건 줄 알았다.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고등학생 때 같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 나는 서른 살이 되어서도 똑같이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시덥잖은 소리를 하며, 우스운 고민에 골몰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래. 좋은 어른이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 그냥, 자연스럽게 가자. 어깨에 힘을 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간다면 허술한 내 모습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봐줘도 괜찮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홀딩, 턴>이라는 제목은 정말 내용과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추억하며 홀딩, 돌아오며 턴. 형식과 내용 양쪽 면 모두에서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잘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서는(턴) 순간은 왜 이리도 슬픈 걸까요. 그래도 꽤... 아름다운 이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는 지킬 수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