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께서 쓰신 리뷰를 차분히 읽어보니 모두들 책을 많이 사랑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아직, 멸종 직전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일단 안심이 되었습니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부할 정도는 아니지만 저 역시 책을 좋아하고,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읽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독서일기, 독서에세이 등 이 책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과 비슷한 책들도 찾아 읽었었죠. 기억에 남는 책으로는 장정일 작가님의 <빌린 책, 버린 책, 산 책> 시리즈와 <고양이의 서재>, 그리고 <이동진 독서법> 등이 있네요. 이 책들도 모두 좋고,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었지만 저마다 2%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위트'였습니다. 정적이다, 라는 인상이 전반적이었죠.
그래서 즐거운 독서는 진정 차분한 류, 안정이 되는 류만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더 신나는 독서가 그리웠는데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다름 아니라 책 이야기를 나누는 일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가령 이 책은 이렇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깊게) 읽었다, 와 같은 '심오한(?)' 이야기 말고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가난했었고, 그래서 당최 책이 읽히지 않았다, 라는 식의 신변잡기 말입니다. 조 퀴넌은 그 부분을 정말 100% 만족시켜주는 작가입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하고 평범한 공감을 이끌어주는 것이지요.
멸종 직전까지는 아니지만 제 주위에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다들 영화 이야기는 즐겁게 잘 나누지만, 책 이야기를 꺼내면 진지한 소리, 고리타분한 소리를 한다며 고개를 젓기 일쑤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제게 선물해준 이 작은 공감대는 실로 귀했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독립 서점이 여타의 어떤 장점을 지니든 간에, 대개 나 같은 사람을 인정 못하는 재수없는 직원들이 버티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직원들이 좋아하는 작가는 죽은 사람이거나, 이국적인 인물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폴 오스터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흔히 그저 겉멋만 들어서 특이하게만 보이려는 일군의 사람들을 일컫는 '홍대병'이 엄연히 독서에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지적하면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홍대병' 환자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소리치고 싶었죠.
"그 책이 진짜 좋은 거예요?"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은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는 책이었습니다. 허영심. 네, 바로 허영심 없이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죠. 그리고 동시에 위로도 받았습니다. 그래, 마냥 즐거운 독서도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이동진 독서법>에서 이동진 작가님도 비슷한 말을 하신 적이 있었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책장을 덮어도 된다고 말이죠. 이렇게 수차례 반복해서 여러 작가님들께 듣다보니 저도 책을 일면 '숭배'하듯 경외시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니, 가벼운 독서라고 해야할까요.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