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무엇이든' 쓰고 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자랑해도 괜찮을까요. 짧게나마 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점수까지 매겨가며 평가할 재주는 없고(그래도 별은 다섯 개!) 감상을 정리할 생각입니다. 작가님 말마따나 '두괄식' 인간과 '미괄식' 인간이 나눠진다면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정말 '무엇이든' 쓰도록 도와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시작'을 위해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글을 시작할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가령 글을 쓸 때 필요한 장비(?)는 무엇인지, 또는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중에서 유독 첫 문장에 대한 꼭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가상의 모니터에 쓰인 첫 문장을 한참 들여다 보면, 문득 그게 첫 문장감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그건 67번째 문장이거나 82번째 문장에 어울린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문장을 지우고(아니면 아래로 내리고, 혹은 문장 저장소에 넣어두고) 첫 문장을 다시 쓴다. 이번에도 대충 쓴다. 그리고 다시 그 준장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여러 개의 문장을 첫 문장으로 써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첫 문장이 나타난다."
저는 제대로 된 첫 문장을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처음'에 썼을 뿐이었죠. 그러니 저 말을 보았을 때 얼마나 뜨끔했던지요. 그간 썼던 글을 몇 개 들춰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에 어울리는 문장들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문장들이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죠.
아이고야. 이게 다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아니었을라나요...). 문제가 속속들이 드러났습니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습니다. 게으름. 제 글은 정말 게을러빠져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첫 문장을 떠올리기 귀찮아했고, 마땅한 표현을 찾기 귀찮아했고, 적당한 길이까지 쓰는 것도 귀찮아했습니다. 그러니 못 갖춘 글이 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단점의 공통점이 같은바 개선책 역시 하나로 정리되어 다행입니다. '부지런함'.
아이고야, 아이고야. 이 얼마나 뻔한 소리인가, 하고 통탄해 하신다면 저도 할 말이 더 남았습니다. 작가님은 "그러니 부지런해지세요."라고 말하지 않거든요. 운동하지 않고 식스팩을 얻을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죠. 그렇지만 "운동하세요." 소리는 얼마나 지겹던가요. ('지겹다' 정도면 정말 많이 봐줬다...) 작가님은 "운동하세요!"하고 다그치는 대신 고해성사를 합니다. "나도 그랬어요... 아니, 지금도 그래요...."
아이고야, 아이고야, 아이고야! 그러니 작가님 글재주에 반푼어치도 안 되는 저는 이렇게 쓰는 수밖에 없답니다. 제가 어떻게 작가님보다 좋은 글을 쓰겠어요. 아, 그래요. 모르는 일이죠. 제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덕분에 작가님보다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을지도요. 그러나...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아실 거예요. 제게는 그렇게 특별한 능력이 없다는 걸요. 그러니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글을 쓴다는 건 부끄러움을 견디는 일이 아닐까, 하고요.
어깨에서 힘을 많이 덜어냈어요. 좋은 글을 쓰겠어, 라는 포부는 잠시 접어두고 글을 쓰겠어, 만을 남겨두었죠. 저는 프로 작가가 아닌걸요. 제 어깨에 올려둔 짐은 다 저 스스로 올려둔 것이었음을 깨달았아요. 아무도 저더러 글 좀 잘 쓰라고 눈치준 적 없는데 말이죠. 하, 얼마나 후련하던지. 제 나름에는 이렇게 긴 글을 전보다 빠르게 써낼 수 있었어요. 감사할 따름이죠.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남기고 가려해요. 솔직한 글이 정말 좋은 걸까 하는 의문에 대한 이야기예요.
"글을 쓴다는 것은 '최초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포털의 댓글들이 금방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거기에 어떤 '정리'와 '공감'도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는 오랜만에 짤막한 메모를 남겼어요.
"나는 글을 혼자 써왔다. 내 세상이 모두의 세상인 양."
아이고야.......... 저는 이런 책이 좋아요. 젠체하지 않고 가슴을 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