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별혜의 서재
  •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 11,700원 (10%650)
  • 2024-11-15
  • : 208

고타마 싯다르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본명입니다.

석가모니는 소왕국 '카필라'의 왕자이지만 모든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고행한 끝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고 많은 이들에게 교화하다가 여든의 나이에 열반에 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토록 짧은 문장으로 그의 생애를 설명했지만 그가 베푼 가르침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세상 곳곳에

전파되어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은 이런 의문을 품고 읽게 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싯다르타] 제목만 읽었을 땐 석가모니의 일생을 다룬 책이 아닐까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었습니다.

물론 작중에 석가모니가 등장하기는 합니다.

다만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석가모니의 본명인 고타마 싯다르타를 나눠서 세존 고타마와 구도자 싯다르타로

구분하여 등장인물을 창조해 낸 것이죠.

작품은 브라만 계급의 아버지를 둔 싯다르타가 친구인 고빈다와 함께 출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세존 고타마 아래서 수행하려던 싯다르타는 문득 깨달음은 가르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고빈다와 헤어진 후 홀로 길을 떠나게 됩니다.


'인간은 배워서는 아무것도 깨달을 수가 없다'는 사실만 알게 됐지!

사실 이 세상에는 '배움'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

오직 하나의 깨달음만 존재할 뿐이야. 그건 도처에 있어.

바로 아트만이지.

이건 내 안에도 있고, 자네 안에도 있어. 모든 존재 안에 있지.

아트만을 깨닫는 데 가장 큰 적은 그것을 배워서 알려고 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문들 곁에서> 中에서


싯다르타는 길에서 만난 매혹적인 창부 카말라의 사랑을 얻기 위해 상인이 된 후

서서히 돈과 권력의 세계에 눈을 뜨지만 더 많은 부를 거머쥐고 사랑하는 여인과 쾌락에 빠질수록

오히려 자신의 내면은 텅 비어 가고 급기야 나락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마저 끊어버리려 강으로 향한 싯다르타는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

그의 내면에서 죽은 것은 오래전부터 죽기를 갈망해 온 다른 무엇이었다.

그건 일찍이 뜨거운 참회의 시절에 죽이고자 했던 내면의 다른 자아였다.

그건 오랜 세월 맞서 싸웠으나 번번이 굴복했고, 죽었다 싶으면 다시 살아나

기쁨을 앗아가고 두려움을 안겨주던 바로그 불안에 떨면서도

자부심에 차 있던 소아小我였다.

그 자아가 오늘 여기 숲 속, 아름다운 강가에서 마침내 죽음을 맞았다.

지금 그가 이렇게 두려움 없이 확신에 차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할 수 있는 것도

소아의 죽음 때문이 아닐까?

<강가에서> 中에서


다시 태어난 싯다르타는 맨 처음 그가 출가했을 때 강을 건네준 뱃사공 바수데바를 만나

그와 함께 지내면서 강으로부터 가르침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평화를 얻은 싯다르타 앞에 그와 꼭 닮은 아들을 데리고 나타난 카말라.

세존의 입적 소식에 길을 나섰던 카말라가 뱀에 물려 죽자 싯다르타는 아들을 맡아 키우게 되지만

그의 아들은 낯선 부친의 존재를 거부하고 어느 날 몰래 도시로 도망쳐버립니다.

아들을 향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던 싯다르타를 타이르는 바수데바에 의해

그제야 자신의 출가를 반대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만큼은 그런 번뇌와 고통, 환멸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될까요?

아들을 위해 열 번 죽는다고 해도 당신은 그 아이가 짊어진 운명의 무게를

털끝만큼도 덜어줄 수 없을 겁니다.

<아들> 中에서


싯다르타는 세상 속에 몸을 던져 모든 번뇌와 절망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또 모든 것을 비워낸 셈이죠.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통찰하며 바라보며 깨달아갑니다.

그리고 자연의 순리처럼 흘러가는 강에 모든 것을 흘려 보내며 완성을 이룹니다.

책장을 덮으며 저는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에 친구 고빈다를 다시 만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 아래서 가르침을 받았던 고빈다는 그 후로도 수행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불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라만상과 일체를 이룬 싯다르타를 만난 고빈다는 가르침을 청하지만

그는 알 듯 모를 듯 미소만 짓습니다.

그런 그가 친구에게 남긴 한마디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그 문장을 남기며 오늘의 책 이야기를 이만 마칠까 합니다.


내가 이 돌멩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까닭은

이게 언젠가 이런저런 것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오래전부터 언제나 그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 中에서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