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 외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이미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모국어와 달리 외국의 언어체계를 배우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또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귀에 익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주로 비속어나 욕설이 그렇죠. 왜 그런 걸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이토록 어려운 외국어 단어의 의미를 통해 철학을 이야기하는 책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영어가 아닌 독일어 단어가 등장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철학이라는 창을 통해 일상을 들여다보는 이진민 작가입니다.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거쳐 현재 독일에서 거주한 지 6년째 되는,
스스로를 5살짜리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작가는
그럼에도 단어가 가진 의미를 깊이 사유하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16개의 독일어 단어를 통해 독일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체의 가치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언어란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빚어낸 작품이고,
단어는 그 작품의 중요한 기본 재료다.
어떤 단어가 존재하는가를 통해 그 사회를 알 수 있고,
여러 단어가 있다면 어느 상황에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쓰는가를
통해서도 그 사회를 볼 수 있다.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中에서
처음엔 이 책을 독일어 단어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는 건가 하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단어를 통해 독일의 사회와 독일인들의 일상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살펴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인문학도 아우르며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단어 하나로 저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과 깊이 사유하는 방식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언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단 하나가 아니라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사실도요.
아르바이트라는 말이 슬퍼지는 지점이 독일과 관련해서 하나 더 있다.
"Arbeit macht frei (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바로 나치가 만들었던 유대인 강제수용소 정문에 박아두었던 글귀다.
(중략)
그곳에 수용된 이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착취당한 뒤,
생명마저 착취당했다.
<아르바이트, 이렇게 슬픈 단어였어?> 中에서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는 보통 '알바생'이라는 축약형 단어로 많이 쓰이는데
알바생은 아르바이트에 학생 學生의 '생 生'자를 더한 합성어입니다.
그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라는 뜻으로만 생각했는데 이 장의 글을 읽고 나서는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는 느낌이 들어 또다른 의미로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단어 하나를 붙들고 면밀히 들여다 보았더니 이토록 생경한 느낌이 들 줄은 몰랐네요.
이 밖에도 선물이란 뜻으로만 알던 '기프트(gift)'가 독일에서는 '독'을 뜻하고 있다는 이유를 알아보거나
유치원을 뜻하는 '킨더가르텐(Kindergarten')에서 독일의 유아교육에 대한 사회적 단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준비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갈 나라의 말로 된 간단한 회화를 공부합니다.
주로 인사나 감사표현, 거래할 때 금액을 물어보는 문장들을 외우고 기억하게 되죠.
이제는 짧은 인사말이나 감사표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의 문화에 더 깊은 이해가 들어가서 더 쉽게 외워지지 않을까요?
독일이라는 나라가 마냥 딱딱하게만 여겨졌는데 이 책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읽으면서
저자가 좋아하는 단어 '게보르겐하이트(Geborgenheit)'의 뜻처럼 조금은 친밀해진 느낌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감할 때면 '축제'를 외치는 독일의 일상을 담은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