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다섯 번 째 이야기 - 그날 이후로
녹차 잎을 따서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가 있다. 그녀의 과거를 이웃들은 잘 모른다. 찾아오는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다. 그녀에겐 베트남에서 시집 온 이웃 리엔이 유일하다. 같이 한글을 배우는 동료이다. 같이 학교에 가자고 집에 찾아오곤 한다.
할머니 이름은 금령. 어린 금령은 돈을 벌겠다고 작은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섰다. 이틀 동안이나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나무로 지은 막사. 빛조차 들지 않는 다다미방. 거기에서 어린 금령은 들이닥치는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 도 없었다, 자신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라주길 바래서. 그러나 그 아픔은 평생 동안 그녀를 괴롭힌다. 늘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몰랐다. 늘 자신이 죄인인 듯 살아갔고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리면 그 추운 겨울이 생각나 더욱 힘들었다.
그러던 금령이 청계천 구경에 나섰다가 일본대사관 앞에서의 위안부할머니들의 시위를 보게 되었다. 금령은 이제까지 이런 사실을 입 밖에 낼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은밀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어쩌면 감추고 싶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날 금령할머니는 이제까지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시원하게 하는 시위대를 보고 너무나 놀랐을 것이다, 상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말을, 글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금령은 그곳을 다시 찾는다. 이제 금령은 눈이 와도 무섭지 않다. 자유다.
우리는 사실 쉽게 역사를 말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힘든 삶이었을까? 어린 금령은 얼마나 삶과 죽음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었을까 ? 그 이후는 또 얼마나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갔을까?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런 그녀가 늦게나마 자신이 당했던 아픔을 드러내게 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금령에게는 다행이었을 것이다. 일본에게 그들의 만행을 드러내고 사과를 요구하는 일 자체가 이렇게 어렵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 어려운 싸움이 아직도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