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셔의 작품 <그리는 손>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쓰셨다고 하셨는데, 인물들의 관계가 그 그림처럼 정말
얽히고 설켜 있다.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게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머릿속으로 관계를 생각하며 읽었는데,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혀서 결국 포스트잇에 관계도를
그렸다.
그리고
나니 훨씬 더 얽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인물들의
관계를 그리면서 읽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 있다. 바로 ‘손’의
주인공을 파악하는 것이다.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챕터의 큰
제목이 “~하는 손”인 경우가
많은데,
이
손은 소설 속의 한 인물을 지칭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에셔의 손>은
전반적으로 “기억”에 관해
서술한다.
기억을
지우는 자,
기억을
뒤쫓는 자,
기억을
거부하는 자,
기억에
고통받는 자,
기억
자체를 없애려는 자의 이야기가 책 408쪽에 걸쳐 서술된다. 자연스럽게
‘기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미래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기억을 지우겠다고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기억과 행복했던 기억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잊게 되는 것인데, 모든
상황을 고려해봐도 자신의 살 길이 기억을 삭제하는 것 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지우는 것이니까. 특히
수연과 미연이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읽는 게 고통스럽다. 그들의
고통을 직접 느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 김백상 작가의 필력이 뛰어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상을
받은 작가는 다르다. 애초에 그림에서 영감을 떠올린 것 자체가 남다르다.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의 표현력이 너무 좋아서 머릿속으로 장면이 모두 상상된다. 글
자체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조차 없다. 마지막으로
몇 마디만 더 보태 보자면. 이 책은 나의 SF 사랑을
굳혀버린 책이다. 다시 말해 SF를
부정해왔던 과거의 내 태도를 반성하고 SF를 좋아함을 인정하게 만들어버린 책이라는 말이다. 사실 이런
말 다 필요 없고… 재밌는 책이다. 그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러니 이 리뷰를 읽는 당신도 읽어 보기를 바란다.
현재로서는. 한계를 확인하는 동시에 가능성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표현이었다. 현재로서는, 마차를 타고 다니지만 조만간 자동차를 개발할 겁니다. 현재로서는, 땅 위를 달리지만 머지않아 하늘을 날 겁니다. 현재로서는, 대기권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수십 년 내에 달에 착륙할 겁니다. 현재로서는, 달에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지만 다음에는 화성을 탐사할 겁니다. 인류는 지금껏 ‘현재로서는’이라는 말을 발판 삼아 내일로 도약했다. 앞으로도 그럴 테고. 얼마나 멋진 말인가.- P362
어두운 하늘에는 고독을 잊기 위해 스스로를 태운다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성수처럼 뿌려지는 별빛의 세례를 받으며 언젠가는 나도 눈부시게 빛을 발하리라고 마음을 다졌다.
-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