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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찌모찌의 맛있는 책 읽기
  • 무지의 즐거움
  • 우치다 타츠루
  • 16,200원 (10%900)
  • 2024-11-04
  • : 5,278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많이 알게 되는 일일까요.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모르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 일일까요.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모른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부족해 보일까 봐, 뒤처진 사람처럼 보일까 봐, 아는 척으로 자신을 지키려 했던 때가요.


그런데 우치다 다쓰루의 『무지의 즐거움』을 읽으면서, 그 조급한 마음을 천천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한국의 출판사 유유가 직접 기획하고, 한국의 편집자와 번역자가 던진 질문에 우치다 다쓰루가 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더 인상적인 건 책의 형식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진 스물다섯 개의 질문이 저자에게 건네지고, 그는 그 질문들을 붙들고 자신의 사유를 천천히 풀어냅니다.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배움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읽다 보면 어려운 사상을 배운다는 느낌보다, 깊고 유쾌한 어른과 긴 저녁을 보내는 느낌이 듭니다. 책의 제목인 『무지의 즐거움』은 결국 배움의 즐거움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모른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저자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배움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넓고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은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기쁨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남아 있다는 말은 아직 만날 세계가 남아 있고, 아직 새롭게 변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모호함과 무지를 견디는 힘을 ‘지적 폐활량’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이 한참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지성은 많은 지식을 쌓는 능력만이 아니라, 아직 알 수 없는 것을 품고 버티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답을 서둘러 확정하지 않고, 낯선 질문 앞에서 숨을 고르며, 모른다는 사실 속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힘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어른에게 필요한 공부의 태도일지 모릅니다. 책이 말하는 어른의 공부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기 위해 배우지만, 어른은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배웁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생각이 굳어지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새롭게 조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미 익숙해진 판단, 오래된 습관, 굳어진 확신을 조금씩 흔들어 보는 일 속에서 어른의 배움은 다시 시작됩니다. 특히 좋았던 건, 노화와 신체의 변화까지 배움의 자리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은 대개 상실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감각을 익히는 길을 찾습니다.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을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이해하게 됩니다. 예전처럼 빠르게 판단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더 천천히 보고 듣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이 책은 개인의 배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길가에 피어난 꽃, 바람의 온도, 몸의 작은 변화에서 출발한 사유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혐오, 공동의 자산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우치다 다쓰루의 글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철학이 아닙니다. 그는 선과 악이 뒤섞인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그 답을 일상을 감지하는 섬세한 태도 속에서 찾아갑니다.


『무지의 즐거움』을 읽으며,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은 답을 가진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좋은 어른은 질문 앞에서 닫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낯선 세계 앞에서 다시 배우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확신을 절대화하지 않고, 아직 이해하지 못한 타인의 자리와 세상의 복잡함 앞에서 조금 더 오래 숨을 고르는 사람입니다.


이 책은 지적인 자극을 주는 동시에 마음을 가볍게 해 줍니다. 모른다는 사실이 더 이상 수치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건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뜻이고,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건 아직 내가 새로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처럼, 무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천진한 노학자가 건네는 유쾌한 인생 공부의 초대장. 배움이 성취의 도구로만 여겨지는 시대에, 이 책은 배움 자체가 삶을 넓히는 기쁨임을 다시 일깨워 줍니다. 모르는 만큼 우리는 다시 물을 수 있고, 묻는 만큼 다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배움이 필요하다는 말은,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자랄 수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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