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이 오면 늘 마음이 조금 분주해집니다. 무엇을 끊어야 할지,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평소보다 더 신앙적인 시간을 보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 실천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참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잠시 불편함을 견디는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방향이 그대로라면 사순절은 쉽게 습관이 되고 맙니다. 겉으로는 경건해 보여도 삶의 중심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톰 라이트는 사순절을 몇 가지를 포기하는 기간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의 방향을 다시 바로잡는 시간으로 이끕니다. 회개는 지나간 잘못을 곱씹는 데 머물지 않고, 세상의 질서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 앞으로 돌아서는 일이 됩니다. 시선을 바꾸고, 걸음을 고쳐 딛고,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자기 절제의 시간만이 아닙니다. 톰 라이트는 그 넓이를 '하나님 나라'라는 말로 열어 줍니다. 사순절은 마음을 괴롭히는 시간이 아니라, 길을 다시 찾는 시간입니다. 방향을 잃은 삶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특히 광야를 다루는 부분에서, 톰 라이트는 그 사건을 정체성과 소명의 자리에서 읽습니다. 세례 때 확인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부르심이 곧바로 시험대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힘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시고, 말씀 안에 머물며, 아버지를 신뢰하며, 맡겨진 길을 벗어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광야는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가 되실 것인가가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흔들렸던 자리에서, 예수는 참 이스라엘로 서십니다. 유혹은 다른 길을 제시하지만, 예수님은 끝내 하나님의 길을 붙드십니다. 광야는 그렇게 십자가의 길이 미리 비치는 자리가 됩니다.
이 대목은 우리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역시 더 쉬운 길을 택하고 싶고, 더 빠른 답을 얻고 싶고, 내 힘으로 상황을 바꾸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 믿음은 마음속 다짐이 아니라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의 문제가 됩니다. 사순절은 바로 그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방식에 다시 귀 기울이게 하는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십자가를 다루는 대목에 이르면 책의 시야는 더 넓어집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내 죄를 위한 죽음이라는 고백으로 먼저 받아들입니다. 그 고백은 귀하고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톰 라이트는 십자가를 거기서 멈추게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까지 함께 무너지게 하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과 세상의 운명을 몸에 지고 어둠의 시간 속으로 홀로 들어가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손쉬운 승리가 아닙니다. 그 길 앞에는 두려움이 있고, 버림받음의 공포가 있고, 인간으로서의 떨림이 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그 무게를 아시면서도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이 기대한 칼의 길이 아니라, 목자가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길을 끝까지 받아들이십니다.
이렇게 읽고 나면 십자가는 익숙한 종교 언어 안에 가둘 수 없는 사건이 됩니다. 거기에는 슬픔이 있고, 억울함이 있고, 인간의 폭력과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둠을 피해 가지 않으십니다. 그 안으로 들어오셔서 악을 끌어안으시고, 세상을 향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여전히 십자가가 복음의 중심인 이유입니다.
부활에 대한 그의 설명도 같은 방식으로 시야를 넓혀 줍니다. 부활은 죽음 이후를 위한 위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는 선언입니다. 부활은 슬픔 뒤에 덧붙는 위로가 아니라, 세상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소식입니다.
톰 라이트는 부활을 새 창조의 시작으로 읽습니다. 세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타락과 탐욕과 폭력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두운 한복판에서 새 생명의 질서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죽음의 지배 아래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생명을 주는 통치 아래로 옮기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뒤흔드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견디게 하는 힘일 뿐 아니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미래의 약속이 현재의 삶을 붙들게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부활을 제자들의 사명과 떼어 놓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맡기십니다.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고, 그 길을 따라 살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권세는 선언으로만 머물지 않고, 제자들의 순종을 통해 역사 속에서 펼쳐집니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마태복음의 처음에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에도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부활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교회와 세상 가운데 이어지는 현재의 현실이 됩니다.
부활절은 지났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가리키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야를 지나 십자가를 통과하신 주님은 이제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사순절과 부활절은 해마다 스쳐 가는 절기가 아니라, 복음의 중심을 다시 붙들게 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