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 우리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인격이 여실히 보입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벌거벗은 존재가 됩니다. 우리를 포장한 것들이 제거된 상태이지요. 날 것 그대로의 우리는 참으로 생소합니다.
재난은 갑자기 도래합니다. 우리가 준비되지 않을 때 말이죠.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진정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요.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 주위에 있음에도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요.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그때가 가장 최선의 시작점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쥬라기 공원>, <스파이더맨>, <미션 임파서블> 등 다양한 장편 영화 20여 편을 집필한 미국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켑(David Koepp).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재난 이야기는 지금 현재 실제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구체적이고 생생합니다.
작가는 과학적인 기초 위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초강력 태양 폭풍으로 인해 지구에 벌어지는 사건들입니다. 이미 1859년 캐링턴 사건이 있었기에 이 이야기는 마냥 허구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당시 전기를 사용하는 물건이 극히 드물어 피해가 크지는 않았지만, 이 일이 지금 일어난다면 지구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극지방에서만 발생하는 오로라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보이게 될 때 입게 되는 지구적 재난이지요.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 발생하여 정전 사태가 발생하게 되고, 전기 사용이 일상화된 현대인들은 큰 혼란을 경험합니다.
사실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인류의 멸망과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매우 위험하고 혼란스럽기는 하겠지만요. 이 소설에서도 말하고 있듯, 인간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그러한 재난 상황에서 발현되는 극도의 탐욕과 이기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설 『오로라』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의 생존기를 그립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얽혀있습니다. 극도의 불안함은 기존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물론 부정적일 가능성이 더 크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상외의 진심이나 과거와의 화해 또한 마주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는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마음 다한 배려와 진심 어린 소통입니다. 극단의 순간에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힘은 '나'만을 위한 삶에서가 아니라, '너'를 향하며, '너'를 위한 삶입니다. 진정 서로를 위할 때에 우리는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는 창의적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재난 이야기는 우리를 극단의 상황으로 밀어붙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미래에 발견할 그 무엇이 아닙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바로 '너'입니다. 너를 향한 사랑은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도 가장 영롱할 것입니다.
*이 리뷰는 문학세계사(@munse_books)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