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기도하는 동안 여자는 괴물이 된다
kumyeeun 2024/09/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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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계
-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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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 2024-08-09
: 1,363
『투계』의 소설들은 가부장제의 폭력을 까발리며 가족이라는 신화를 깨부순다. 그렇다. 가족은 신화다. 그렇기에 하나님 '아버지'는 신이 된다. 신의 존재 아래 집은 신성불가침의 성전으로 자리 잡는다. 그 성스러움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신의 기적과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은 죄다.
하지만 암푸에로는 이 최후의 신성에 당당히 조소를 날린다.
「그리스도」의 화자는 아픈 동생을 간병하는 소녀다. 소녀는 어느 날 엄마와 함께 동생에게 먹일 성수를 뜨러 교회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적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상'을 파는 아주머니를 보며 생각한다.
"왜 아주머니는 그리스도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기적을 보여주는 그리스도라면 동전이 가득할 텐데. 버스비가 없어서 가끔은 먼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우리랑은 달리."
쉴 틈 없이 동생을 돌봐야 하는 소녀에겐 TV 애니메이션 한 편을 끝까지 보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이 소박한 일조차 이룰 수 없는 기적을 누가 '기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에서 기적의 허상성을 보여준 작가는 뒤이어 「수난」에서 기적 뒤에 묻힌 여자를 보여준다. 「수난」은 "성경 속 여성 막달라 마리아를 재해석하여 예수의 수난사를 다시 쓴" 이야기다. 암푸에로가 새로 쓴 성경에서 신은 사랑이라는 달콤한 말로 여자의 힘과 피와 에너지를 뺏어 '기적을 행하는 자'로 남는다.
신의 위선은 「상중」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리아의 오빠는 마리아가 자위를 했다는 이유로 마리아를 '창녀'라고 부르며 축사로 쫓아낸다. 그곳에서 수많은 남자들은 마리아를 강간한다. 마리아의 살갗은 모두 찢어지고 온몸에서 피가 흐른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가 이곳에 방문한다. 마르타는 예수를 붙잡고 마리아를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예수는 그저 믿음을 가지란 말만 되풀이하며 마르타와 마리아를 남겨두고 떠난다.
"마르타가 따라 나와 무릎을 꿇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그가, 당신 오빠의 집이오, 하고 마르타에게 대답했다.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오, 남자에 대한 존중이 그 집안에 대한 존중이니까, 그래도 그에게는 이미 얘기했소, 그녀를 풀어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내가 그리되도록 기도하겠소.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가 마르타에게 말했다."
암푸에로는 신화를 새로 쓰며 그 작동 방식을 파헤친다. 말뿐인 사랑과 믿음으로 폭력을 덮고, 그 결과 생겨나는 고통과 죽음을 희생으로 명명하며 기적의 토대로 사용하는 일. '희생당한' 자들에겐 신의 기적은 그뿐이다.
예수의 방관으로 결국 사방의 벽에 밀폐된 폭력은 오롯이 그 안에 있는 여자의 몫이 된다. 이제 같잖은 기적 따위를 믿을 수 없는 여자들은 예수가 성스러운 얼굴로 기도하는 동안 피와 똥을 뒤집어쓴 괴물이 되기를 택한다.
「경매」의 화자는 어린 시절 투계꾼인 아빠를 따라 투계장을 따라다닌다. 그곳에 있는 투계꾼 아저씨들은 '나'를 만지며 성폭행을 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안고 가던 수탉의 배가 터져 "닭의 창자와 피와 닭똥"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때 아저씨들이 구역질을 하며 자신을 피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닭의 피와 똥을 몸에 묻히고 다닌다. 그런 '나'를 아저씨들은 '괴물'이라고 부른다.
「경매」처럼 암푸에로 소설 속 여자들은 피, 똥, 벌레와 같은 역겨운 이미지로 칠갑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상중」의 마리아는 "집에 남자 하나 있느니 세상 모든 바퀴벌레를 들이겠노라고" 말하며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 위를 뛰어다닌다. 「알리」에서 알리는 가위로 자신의 머리부터 아래턱까지를 긋는다. 상처는 보랏빛 애벌레처럼 변해 그녀를 괴물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투계』를 읽고 있으면 이러한 이미지들이 과하다는 생각도 무엇의 '비유'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폭력은 그 정도로 역겹고 '살기 위한' 여자의 투쟁은 실제로 피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김혜순 시인이 추천사에 쓴 것처럼 "여자의 상처가 폭발할 때 비유는 필요 없다."
『투계』는 이렇게 폭력 속에서 괴물이 된, 혹은 괴물이 되기를 택한 여자들을 그려낸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누가 정말 괴물처럼 보이는지는 겉모습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가족이라는 성전의 하이얀 외벽이 더이상 깨끗해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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