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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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
무슨 말인지 처음 보는 단어다.
보통의 책과는 달리 가로가 좁아서 <깡깡이>는 한 손에 냉큼 들어오게 날씬하고, 장편소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얄삭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며칠째 책을 펼치지 못했다. 책 표지에 적힌 문장들이 묵직하고 아련해서다.
"우리 집 살림 밑천 기특한 맏딸!"
"내가 자유로우니 동생과 엄마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잘은 몰라도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되었다.
어쩌면 내 이야기, 내 엄마 이야기, 우리 가족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이야기는 어린 정은과 어른이 된 정은의 시점이 교차하며 흘러간다.
정은의 일곱 식구.
아버지는 월급도 제때 나오지 않은 영세한 선박회사의 화물선 선장이었다가 그나마 해난사고 후 빚만 지운 채 가족을 떠나버린 무책임한 가장이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정은의 엄마는 늘 돈에 쪼들리며 '새끼들은 키워야지' 하는 일념으로 억척스럽게 녹슨 배의 녹을 떨어내는 일, 깡깡이 일을 했다.
정은 밑으로 동식, 정애, 정희, 동우 줄줄이 네 동생이 있다.
고달픈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동생들을 업어 키우며 중학교 진학을 늦추어야 했던 어린 정은을 보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너무도 익숙한 삶의 풍경들이 떠올라 먹먹했다.
나는 맏딸도 아니고, 정은처럼 동생들을 거두느라 희생하진 않았지만, 내 언니를 정은 같은 언니라 말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정은과 같은 언니 두셋쯤은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된 정은이 번듯한 화가가 되어 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여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독신으로 살며 조카들 예뻐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치매인 엄마를 가장 살뜰히 돌보는 정은이 고맙기 그지 없었다.
어린 정은은 맏딸이라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엄마의 짐을 덜어주려고 애쓰고, 그래서 동생들에게 늘 착하고 야무진 엄마 대신이었지만, 자라면서는 그 책임감에서 벗어났다.
"고등학교까지는 내가 공부시켜 주지만 그 뒤에는 느그들 스스로 알아서 살아라. 엄마한테 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라."
엄마는 딸들도 공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장남 동식한테와는 다르게 딸들에게는 집착이 없어 정은은 엄마 말대로 자유로운, 온전한 한 사람이 되었다.
이야기 말미, 정은의 고백을 곱씹어 본다.
'가족이니까 무조건 이해하고 사랑해야 된다는 생각은 사람의 운신 폭을 얼마나 좁게 만드는지, 내가 자유로우니 동생과 엄마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
내가 엄마를 볼 때, 마음이 아프거나 화가 이는 것은 아직도 엄마한테 매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맏딸은 아니지만 그 환경에서 내게 주어졌던, 그리고 내가 스스로 떠맡은 책임감에서 나는 아직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치매인 엄마를 바라보고 돌보는 정은의 눈길이 담담하고 평온한 것이 너무 부럽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 엄마가 정은 엄마와 같은 상태일 때, 나는 어떨지 자신이 없고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정은의 엄마처럼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고, 우리에게 별다른 칩착도 없었다. 그저 우리 각자가 잘 살기만을 바라시는 분인데, 나는 정은과 같은 자유로움과 따스한 효도로 보답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깡깡이는 나를 이런 숙제에 직면시켰다.
아마 한동안은 정은과 그 엄마를 떠올리며 나와 나의 엄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