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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약수님의 서재

그는 심지어 단 몇 주 전에 누리던 삶으로도 돌아갈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환자가 그 현실에 대처하도록 돕는 일은 우리 능력 밖의 일로 느껴졌다.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지도, 환자를 위로하지도, 적절한 안내자 역할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환자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치료 방법을 제시했을 뿐이다. 어쩌면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면서 말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 김희정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edddb4cb8e5749b3- P30
외과의 셔윈 눌랜드Sherwin Nuland 박사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How We Die』에서 이렇게 한탄한다. "우리 전 세대까지는 자연이 결국 이기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예상하고 받아들였다. 의사들은 패배의 징후를 훨씬 더 기꺼이 인정하려 했고, 그것을 부정하는 데 있어서는 훨씬 덜 오만하게 굴었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 김희정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edddb4cb8e5749b3- P36
사실 우리는 노인들이나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의학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자주 실망시키는지 알 수 있다. 아주 조금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뇌를 둔화시키고 육체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치료를 받으며 점점 저물어 가는 삶의 마지막 나날들을 모두 써 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환자들이 요양원이나 중환자실같이 고립되고 격리된 곳에서 치료를 받는다.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채 엄격히 통제되고 몰개성화된 일상을 견뎌 내면서 말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 김희정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edddb4cb8e5749b3-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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