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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약수님의 서재

로만은 선실에 둔 기록지에 88번째 줄을 더할 것이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셀 수 있는 것으로 묶어 두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중심마저 떠내려간다. 우주는 시간을 조각낸다. 그러니 일어나면 매일을 기록하라고,지금은 새날의 아침임을 되뇌라고 훈련 때 들었다. 이를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새날의 아침이다.

-알라딘 eBook <궤도> (서맨사 하비) 중에서- P11
숀은 열다섯 살 때 학교 수업에서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배웠다. 이 그림은 보는 사람을 헷갈리게 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 빠트렸다.
그림 속의 그림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자세히 보라고. 바로 여기를.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림 속에 있다.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가 그리는 왕과 왕비는 그림 바깥에, 그러니까 우리 자리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아는 까닭은 우리 바로 맞은편에 그려진 거울 속에 둘의 모습이 비치기 때문이다. 왕과 왕비는 우리와 같은 것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의 딸과 딸의 시녀들을 본다. 그림 제목이 〈시녀들〉인 것은 그래서다.

-알라딘 eBook <궤도> (서맨사 하비) 중에서- P13
하지만 새로운 생각이란 없다. 그저 새로운 순간에 태어난 오래된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저 지구가 없으면 우리 모두 끝장이라는 거다. 지구의 은총 없이 우리는 단 1초도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는 헤엄쳐 건널 수 없는 깊고 어두운 바다 위 배에 탄 선원들이다.

-알라딘 eBook <궤도> (서맨사 하비) 중에서- P16
어쩌면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 이미 죽어서 사후 세계로 온 게 아닐까. 죽어서 가는 곳이 비현실적이고 믿기 힘든 세상이라면, 저 멀리 아름답고도 외로이 빛을 발하는 유리구슬 구체야말로 그런 곳이 아닌가.

-알라딘 eBook <궤도> (서맨사 하비) 중에서- P17
궤도에 있다 보면 영영 떠나고 싶지 않은 욕망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갑작스레 행복에 벅차오른다. 더없이 밋밋한 공간이지만 사방에서 행복이 튀어나온다.

-알라딘 eBook <궤도> (서맨사 하비) 중에서- P21
이들이 궤도를 도는 모습은 미개척지를 찾아다니는 은하계 여행자들을 닮았다. 이들은 아침을 먹기 전 밖을 내다보며 이렇게 말한다.함장님, 아무도 살지 않나 본데요. 몰락한 문명의 잔해일지 모른다. 착륙하게 추력기를 준비하라.

-알라딘 eBook <궤도> (서맨사 하비) 중에서-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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