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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그 말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노동의 종말'을 선언했다는데, 근대의 노동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역시 쉽지 않다. 친구들과 모여서 어떻게 내 멋대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그래도 취업난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백수로 지내면서 불안한 몇 달을 보내고, 그러다 드는 생각. '아... 그냥 평생 백수로 살면 안될까?'

백수가 얼마나 좋은지 난 알아버린 것이다. 매일 책 읽고, 영화 보고, 이런저런 고민하고. 이 보다 더 자기계발적인 직업이 있을까? 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싶어 하는 세대가 대한민국에 지금까지 없었다고 한다.  어른들은 절대로 이해 못할 이기적인 세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없다”고 하시던데... 정말 안될까? 정말? 

 소위 ‘백수문학’이 뜬다고 한다. 그들도 알아버린 것이다. 백수의 파라다이스함을. 21세기형 라이프 스타일!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제레미 리프킨이 말한 '노동의 종말'이 오지 않은 것처럼, 우아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백수 생활은 꿈 같은 얘기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해낸 여자가 여기 있으니, 『백수생활백서』의 서연이 그녀.

서연이 원하는 것은 산더미 같은 책 속에 둘러싸여 매일 매일 책만 읽고 사는 것이다. 그녀가 백수로 사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너무나 명확하다. “책을 읽을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하기 싫다”는 것이 바로 그것. “갖고 싶은 것은 갖는다. 다른 어떠한 것을 포기해서라도 가질 수 있다면 갖는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다.” 라고 말하는 그녀는 당당한 백수다. 아니, 뻔뻔한 백수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뱉는 "빌어먹을..."이라는 말을 듣고도, '틀린 말은 아니지'라고 생각하고 말아버리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뻔뻔한 백수.

『백수생활백서』에는 그녀가 원하는 방식대로 세상을 살기 위한 그녀만의 노하우와 함께 그녀가 겪는 일들이 담담한 어조로 담겨있다. 그야말로 이 땅의 모든 자발적 백수, 또는 ‘백수를 꿈꾸는 자’들을 위한 최신판 생활백서!

아마, 다른 백수에게는 다른 원하는 일(?)이 있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책뿐이다. “나는 책을 소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은 서연의 엄청난 책 욕심을 드러내는 또 다른 말로 들린다. 아마도 서연은 이 책에도 눈독을 잔뜩 들이고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보는 서연은 생각한다. 소설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소설이 있다. 그 둘이 어떻게 닿아 있는지,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 자신에 관한 소설.  "내가 읽어온 책들은 너무 길고 너무 많다. 그러나 나는 그 허무를 사랑한다. 그 수많은 허무의 갈피들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인생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 라고 그녀는 말한다.

일 년에 최소 300권에서 700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는 서연이 책 속에서 언급하거나 인용하는 갖가지 책들을 보는 것도 『백수생활백서』의 숨어있는 재미이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약 스무 권 정도의 책을 보는 효과랄까. 더구나 그만큼의 책을 읽는 애독가가 권하는 책이라면 정말 믿을만하다.

『백수생활백서』는 단지 책 읽기를 너무나 좋아할 뿐인 20대 후반의 평범한(사실은 정말 특이한) 백수 이야기이다. 어쩌면 달콤쌉쌀한 연애 일기일지도, 그녀의 특이한 친구들에 대한 관찰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절대 만만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견고한 고집스러움 없이는 그녀만의 백수표 파라다이스도 불가능했다. 생각해보면, 백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취업보다 몇 배는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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