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도 착하다고 하면서 나의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거절을 잘하니까 친구가 별로 없다. 남의 눈치도 안보면서 남과 잘지내는 방법을 알고 싶다. 저자 케리 올리치, 켈리 권터는 포춘 500대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20년간 기업의 사람과 문화를 바꾸는 일을 해온 조직변화 전문가이다. 정말 책을 읽으면서 별의별 직업이 다 있는 것 같다.
케리 올리치는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심리학∙경영학을 전공하고, 필딩대학원에서 인간개발 및 조직시스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켈리 권터는 위스콘신대학교 영문학 학사, 캐롤대학교 교육학 석사를 받았다. 두 사람은 조직문화∙리더심 코칭 전문 컨설팅 그룹Abbrdcci Group을 공동 창업했으며, ipEC공인 전문 코치이자 Prosci@ 공인변화관리 전문가로서의 이론과 실전을 동시에 갖춘 조합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2023년 런칭한 팟캐스트 ⟨The Bredkout⟩은 애플 팟캐스트 자기개발∙교육부문 1위, 전체 7위를 기록하며 입소문만으로 수십만 청취자를 끌어모았다. 그 열기를 바탕으로 출간한 첫 공동 저서《나는 도대체 왜 눈치를 볼까》는 아마존 베스트셀러이자 신간 1위에 오르며 “왜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지 못 하는가”라는 질문을 미국 전역에 던졌다.
어렸을 때 자기 가족이 엉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적어도 십 대가 되기 전에는 그렇다). 사실 다른 경험이 없으니 비교할 수도 없고, 우리 가족도 다른 집처럼 살아가는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부모에게서 배우는 모든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한다.
친구네 가족이나 TV프로그램을 보고 비교할 대상이 생기기 전까지는 우리 가족이 남들과 다르거나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삶에 대한 믿음은 아주 강력한 접착제처럼 들러붙어서 어린 우리를 작은 상자 속에 가둔다. 처음 말을 배울 때 익힌 억양을 지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한다. 가족의 기대는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지우기 어렵다.

혹시 원치 않는데도 어머니나 아버지처럼 행동하다 문득 깨달은 적 있는가? 그 순간 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우리는 부모를 보면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로 드러났든 암묵적이었든, 가족들이 당신에게 품었던 기대를 들여다보려 한다. 모든 가족에는 저마다 기대와 규칙이 있다.
어떤 것은 분명히 드러나고 어떤 것은 말없이 숨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규칙을 묶어 ‘가족 체계’라고 부른다. 가족 체계란 각 가족이 안에서 살아가고 바깥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뜻한다. 우리가 자라난 가족 체계에는 건강한 규칙과 해로운 규칙이 함께 뒤섞여 있다. 그래서 도움이 안 되는 규칙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건 분명한데, 하지만 이런 말의 밑바탕에 깔린 규칙과 기대가 실제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바로 그 답을 알아내야 한다. 부모는 때때로 지나치게 많은 요구한다.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아야 한다. 가업을 이어야 한다.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너무 멀리 이사하면 안 된다.’ 반대로 기대치가 지나치게 낮을 때도 있다.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삶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신념에 흔적을 남긴다. 사실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이제 부모는 더 이상 지혜와 권위의 전부가 아니다. 사실 많은 부모가 자식이 대신 이뤄주길 바라기도 한다. 어떤 기대가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어떤 기대가 발목을 잡는지를 결국 우리가 가려내야 한다.
케리는 어쨌든 본인이 실제로 부모니까, 부모 노릇이 말도 안 되게 힘들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아들에게 원치 않는 기대를 심어주지 않으려 애쓰지만 100% 성공하기 어렵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말해두고 싶은게 있다. 우리는 부모의 죄책감을 유발하려는 게 아니다.
부모도 다 사람이고, 누군가를 악역으로 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우리는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욕망과 기대에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가 독립해도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여전히 영적 기대를 강요하면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종교에서 비롯된 기대의 잔재는 우리 마음속에 오랫동안 머무른다.

가족의 기대처럼, 초강력 본드를 물처럼 느껴질 만큼 강하게 들러붙는다. 영적 기대에 짓눌리면 우리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진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불안해질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심리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자신에게 물어본다. 앞으로 영적∙종교적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그 목표를 이루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예를 들어 삶에 영성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줄이고 싶은가? 생각하는 바를 적되, 서둘러 끝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작업 역시 깊은 성찰이 필요하며 나중에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심리 상담사나 가까운 친구와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다.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워낙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일일이 맞서다가는 그 자체가 본업이 될지도 모른다.
주체가 여성일때는 어쩌다 화라도 내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격이 더럽다.’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예민하다.’ ‘태도에 문제가 있다.’ ‘팀워크가 없다’ 라와 같은 딱지가 붙는다. 다시 말해 ‘남자들은 원래 그러니까 너는 그냥 착하게 조용히 참아라’라는 뜻이다. 이런 기대가 늘 입을 다문다는 뜻은 아니다. 전혀, 그냥 드러누워서 죽은 척하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무지했고 나쁘게 말하면 한참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싸움은 골라 할 필요가 있다. 항상 편견과 차별을 겪는 집단이라면 어디서나 이런 문제를 겪는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편협함과 싸우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21년 한 연구에서 남성과 여성의 감정 변동에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 수석저자이자 심리학 조교수인 에이드리엔 벨츠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 중 감정이 요동치는 남성은 ‘열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설령 강하게 자극받았더라도 여성의 감정이 변하면 ‘비이성적’이라고 간주한다.” 우리 둘 다 자기주장이 강하지만, 여성이다 보니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허구를 믿는다. 남성이었다면 이런 걱정을 덜 했을지 몰라도 때로는 그릇된 인식과 씨름하지 않고 그냥 일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여성은 매우 직설적이지만 부드럽게 전하려고 더 자주 미소 짓고 흥분하기보다는 계속 침착하려 애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특히 이런 문제는 흑인 여성들에게 더 심각하다. 자기 의견을 말하면 자동으로 공격적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단연 불공평하지만, 누군가의 편견에 말려들지 않고, 버티려면 이런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눈치를 보는데 그걸 하지 말라는게 이 책의 요지이다.
